He's writing/1차 창작

곰 한 마리가 한 집에 있어

 말랑? 아니 그것보단 조금 더 단단한. 그렇다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손등을 누르는 기분에 감겨 있던 눈을 찌푸렸다. 하늘하늘하게 달린 커튼 너머로 옅게 비치는 하얀색 햇살이 가슴께에 내려앉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쓰윽 내밀며 이거 사자. 이거 마음에 들어.’ 하면서 보여준, 뭐랬더라. 당신의 방안에 물결을 만들어보세요?, 어찌 되었든 커튼의 기능은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이쁘기만 한 그런 거였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는 쳐다보는 눈길에 어쩔 수 없이 결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결제한 지 2일 만에 배송이 완료되어, 정작 자기는 이런 거 달 줄 모른다면 옆에서 커튼 다는 걸 구경만 한 그는 커튼이 달리자 너무 좋다며 온종일 커튼 너머의 햇빛을 만끽하며 누워있었었다.

그 뒤로 밤에도 밝아진 방 덕에 추가로 산 안대를 벗자 손등 위에서 움찔거리는 그의 손이 보였다. 매번 잠결에도 상대의 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그의 손을 보는건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살풋 웃음이 지어지게 했다. 꽤 깊은 잠에 빠져있는지 오늘따라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하는 손을 바라보다 이불 속에서 손을 빼 조심스레 겹쳤다. 그제야 움직임이 멈춘 그는 다시 색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잠은 저만치 멀리 달아나버렸고, 그렇다고 일어나기에는 옆에 누운 사람이 깰까 봐 신경이 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창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바람만 느끼며 누워있은지 몇 분째, 아무래도 안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몸을 아주 조금, 아아주 조금씩 비틀어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잡고 있는 손 덕분에 손목이 비틀리지 않게 주의하면서도 침대가 출렁거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옆으로 돌아누워 오른팔을 베개 밑으로 쑥 넣자 동그란 머리통이 품속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린넨 재질의 이불이 주던 시원한 촉감은 금방 사람의 체온에 밀려 사라졌다. 오른팔에 힘을 주자 더욱더 강하게 느껴지는 열기에 그제야 만족한 나는 씨익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 어떡하지.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행위들을 하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으며 정수리 쪽으로 코를 가져다 대었다. 달달함과 고소함이 섞인 체취가 코끝에 머물렀다. 별거 아닌 것에 뿌듯해지는 이 상황도, 또 그게 만족스러워서 웃고 있는 자신이 웃겨 아침부터 만면엔 미소가 가득했다. 한 번 맡기 시작한 냄새는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켜 조금 남아있던 퍼스널 스페이스마저 무너트렸다. 뒤통수에만 대놓고 있던 손은 어느샌가 목뒤로 내려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분거렸다. 여태 끼워져있던 손깍지는 어느새 풀려있었다. 자유로워진 왼손은 헐렁한 잠옷 밑으로 들어가 오동통한 옆구리 위에 안착했다. 적당한 살집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상체를 조물락조물락거리자 간지러운지 약한 신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렇지만 이미 시간은 11시를 넘어가는걸. 이제 점심이야. 일어나야지. 상대의 동의와 의도는 구하지 않은 채 맞지 하며 합리화를 하는 손길은 이제 거침이 없었다. 이런 여유도 주말에만 누릴 수 있는데, 어떻게 잠만 자면서 보내겠어. 아까 전만 해도 상대를 배려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목에 코까지 박는 모습은 남이 보면 꽤 본격적이라고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과 살을 맞닿은 채 뒹굴거리자 꿈쩍 않던 몸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뭐하냐.”

 에이 얼마 안 했는데. 단잠을 방해받은 맹수의 목소리랄까, 낮고 잠겨버린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좋은 아침?”

 자유분방하던 손은 이미 잡혀버렸고, 새까만 눈동자는 어느샌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황천, 아니 죽고, 뭐하냐.”

 막 깨서 그런가 언어 필터가 고장이 난 그의 발언에 눈웃음으로 답하자 한숨을 한 번 내쉰 그는 나를 끌어안았다. 더 잘 테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담긴 행위에 입이 댓 발 튀어나왔지만 딱히 황천길을 탐방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가만히 꼬리를 내렸다. 서늘한 봄바람에 사람의 체온 섞이자 말똥했던 정신도 노곤노곤해지는건 금방이었다. 몇 년째 맡아온 익숙한 향기에 둘러싸여 다시 꿈나라로 빠지려 하는 영혼을 붙잡는 것도 잠시, 등을 몇 번 토닥이는 손길에 눈앞은 캄캄해졌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로 수마에 빠지고 난 뒤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도 느껴지는 무언가에 설핏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강해진 햇살에 눈이 부신 것도 잠시, 꿈벅이며 눈을 뜨자 커다란 무언가가 배 위에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아까는 손이더니 이번에는 몸뚱아리 전체가 올라와 있었다.

 “뭐해?”

 아까 제가 뱉은 물음을 그대로 돌려주자 커다란 두 눈이 눈웃음 아래로 숨어 보이지 않았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눈웃음 하나는 기깔나게 이쁘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을 준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박은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행동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손을 들어 그대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렇게 무게감을 한껏 만끽하고 있던 나는 아까와는 다른 달콤한 향이 나는 걸 깨달았다. 인공 감미료가 들어간 그런 달콤한 향과 함께 맡아지는 매캐한 검은 향을 눈치채자마자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떠졌다.

 “, 나와봐.”

 살짝 굳어버린 내 목소리를 느꼈는지 나를 안고 있던 팔이 조금 더 옥죄어왔다.

 “나와.”

 꽤 중요한 부위에 무릎을 대고 지그시 누르자 그는 향후 자신에게 닥칠 위협을 느꼈는지 몸을 한 바퀴 데굴 굴러 옆으로 내려갔다. 몸을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자 눈에 보인 것은 흩뿌려진 빵부스러기와 어수선한 개수대였다. 물기를 반쯤 머금은 행주를 들어 올리자 달콤한 향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옆에 있는 프라이팬을 뒤집어 탁탁 털자 검정 부스러기들이 개수대 안으로 떨어졌다.

 “이 곰 새끼가... 처먹을 줄만 알고.”

 배는 고픈데 자기가 재워놓고 깨울 염치는 없어 뭔가 해 먹어보겠다고 한 거 같은데, 그는 주위에서도 알아주는 요리 못하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토스트 하나 못 구워 먹어서 이 사달을 내? 왠지 오늘따라 안 하던 짓을 한다 했다. 그리고 번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자 사다 놓은 카야잼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병도 놓쳐서 깼나 보다. 주말에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으로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자 다른 곳과 다르게 조금 윤기가 남아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방문을 벌컥 열자 그새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 그는 이불 위로 두 눈만 내놓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씨익 웃으면서 제 옆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터벅터벅 다가가 풀썩 앉자 꾸물꾸물 기어와 허리에 두 팔 가득 두르는 것이 무슨 말을 할지 참으로 잘 아는 모양새였다.

 “,”

 “알지. 내가 잘못했지. 그래서 치웠어. 미안해.”

 나는 하고 싶은 말의 99.9%는 하지도 못했는데 우수수 내뱉는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게 치운거냐? 바닥에 끈적이는 건 그대로 있고, 행주는 제대로 빨아져 있지도 않으며, 프라이팬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았는데 아까부터 배에 대고 비비적거리는 머리통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보는 모습에 목 끝까지 차오른 화를 한숨 한 번으로 몸 밖으로 빼버린 나는 뒤통수를 꽉 눌러주는 걸로 말을 마무리했다.

 “손은 안 다쳤어? 발은? 유리는 잘 치웠더라.”

 중요한 일 빼고는 다 대충하는 성격이라 유리 조각만 꼼꼼하게 치웠을 그라 손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

 “배 안 고파? 뭐 먹으러 갈래?”

 내 질문에 그제야 몸을 발라당 뒤집은 그는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눕고는 메뉴를 읊기 시작했다. 대충 근처에 있는 식당의 메뉴를 고른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밥은 밥이고, 치울 건 치워야지?”

 어딜 뻔뻔하게 침대에 누워있어. 귓바퀴를 잡은 채 걸음을 옮기자 아악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차마 강하게 뿌리치지도 못하고 내 손목만을 부여잡은 채 방 밖으로 끌려온 그는 귀가 자유로워지자 뭘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행주 제대로 빨고, 부스러기 치우고, 프라이팬 닦아.”

 할 말만 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씻을 준비를 하는 그 순간에도 쿵 하고 어디엔가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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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의 여행

 녹음이 우거진 나무 그늘 사이로 새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나뭇잎에 반사된 햇살은 장난스레 그녀의 눈가를 간질였다. 그녀 또한 그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는지 입가에 살풋 미소를 띄운 채로 걸었다. 발바닥에 스치는 여린 풀잎들은 아직 새벽의 이슬을 다 털어내지 못했는지 살결이 스쳐 지나갈 때 마다 제 흔적을 묻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나온 산책이라 그동안 닫아두었던 귀를 활짝 열자 평소라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어느한 구석에서 들렸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 그러다가도 울면 안 된다 생각하는지 막아보지만 새어 나오는 물기어린 소리. 자신의 숲에서 들릴리 없는 소리에 그녀의 발 끝은 어느새 소리가 시작되는 곳을 찾아 가고 있었다.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수풀이 무성하고 나무줄기가 얽기설기 얽혀있는 길을 손 끝으로 치우며 걸어가자 저 멀리 갈색의 덩어리가 보였다.

 ,흐엉..크흡!”

 더 가까이 다가가자 코를 먹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지 아마도 어깨로 추정되는 곳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아이?’

 자신의 숲은 이미 주변의 영지 내에서는 마녀의 숲이라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을 텐데 이런 어린 아이가 숲 한 구석에서 이러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얘야, 여기서 뭐하니?”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울고 있던 아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건들자 화들짝 고개를 돌렸고, 그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자 마자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울음이 그치고 3초 뒤.

 딸꾹, 딸꾹. , 하끅.”

 발목까지 내려오며 바람과 상관없이 흔들리는 새빨간 머리카락에 보랏빛과 남청색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 잠에 들지 못하는 밤에 유모가 간간히 들려주던 숲 속의 마녀의 외모와 흡사한 모습에 아이는 우는 것도 잊은 채 딸꾹질만을 반복했다.

 어머, .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두 눈동자에 제 눈 만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히는 걸 본 그녀는 깔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손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아이는 차마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가온 두 손은 눈을 꼬옥 감은 채 사시나무 떨 듯 있던 아이의 머리 씌워져 있던 망토를 벗겨 내렸다. 망토를 벗기자 튀어나온 검정의 곱슬머리에 그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투명한 눈물을 머금고 있던 흑안이 깜박이자 눈물 한 방울이 갈색의 피부를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황가의 아이잖아?’

 황족의 아이가 태어났다며 열렸던 축제에 놀러갔다 본 기억이 있는 그녀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마 외모 때문에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 생각해서 가져다 버린거야?’

 자신의 추론이 얼추 들어맞는다 생각했는지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을 곱게 만들며 그녀는 아이에게 물었다.

 , 부모님은 어디 가고 혼자 있니.”

 생각 외로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의 입이 조금 열렸다.

 “..다고, 기다리면 온..다고 했,-“

 다시 생각해도 서러운지 결국 말의 뒤는 다시 울음에게 먹혀 사라져버렸다.

 에휴, 이놈의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질 않아요. 변하질. 옛날에는 뭐랬지. 혈통이 중요하다 하지 않았냐.’

 얼마되지도 않은, 아마 약 몇 백 년 전의, 사상을 기억하는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이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혼자 있던 것보다는 나았는지 아이는 어느새 통통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벗겨내었던 망토의 단추를 제대로 여미더니 아이들 번쩍 들어 안았다. 갑작스레 변한 시야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는 벌벌 떠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에 묻은 의문을 읽었는지 그녀는 눈을 곱게 접으며 입을 열었다.

 나랑 가자. 울보야.”

 아이의 눈을 가리며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덮쳐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은 아이는 어느새 그녀의 품 안에서 색색거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날아오른 그녀는 허공을 가볍게 밟으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타닥거리며 모닥불이 타오르며 작은 불씨들이 방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게슴츠레 띈 눈은 갑작스런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으음, 무울..”

 평소라면 옆에 놓여져야 할 물잔이 놓이지 않자 아이는 눈에 좀 더 힘을 주어 크게 떴다. 그러자 붉은 파도가 눈 앞에서 출렁거렸다.

 깼니?”

 잠들기 직전의 일이 생각났는지 이불을 꼭 쥔 손이 좀 더 동그랗게 말렸다.

 목말라?”

 하지만 갈증이 더 컸는지 아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런 모습이 한껏 귀여웠는지 웃던 그녀는 손 끝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떠오른 유리잔 안에는 청량한 물이 차올랐다.

 우와아아.”

 난생 처음 보는 마법에 아이의 입에서는 순수한 감탄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이리 바라 봐주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은 그녀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배고프지 않아? 밥 먹을래?”

 꿀 물처럼 달디 단 물을 마셔버린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격하게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게 도와주며 손을 잡아 끌은 그녀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본 풍경은 그 어떠한 풍경이라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가 인생에서 본 그 어느 것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매혹적이었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향연과 음식의 냄새는 어린 아이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고, 곧 그것은 아이의 미소와 웃음으로 연결되었다.

 진짜 다 먹어도 돼요?”

 그럼.”

 자신이 가리키면 날아와 접시 위에 앉은 음식은 눈도 입도 행복하게 만들었으며, 어느새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하나의 작은 파티를 연상시켰다.

 잔뜩 먹어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는 아이는 어느 집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서는 주로 뭐 했어?”

 거의 아무것도 안 했어요. 형들은 수업 받고 그랬는데 저는 하고 싶은 거 하랬어요.”

 아마 태어나자마자 계승은 포기했을 것이고,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별다른 교육마저 시키지 않았겠지.  

 , 집에 가고 싶니?”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아이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

 가도 할 것도 없고, 다들 절 싫어하는 걸요.”

 그래? 그럼 나랑 여기서 살자.”

 그녀의 질문 이후에는 꽤나 오랜 공백이 그 사이를 채웠다. 제 나름대로 고민을 하는 건지 입을 앙다문 채 몇 분이고 말이 없던 아이는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내 이름은 레플이야. ?”

 이름을 답하는 것이 무엇이 어려운지 이 또한 오랜 시간 뒤에 대답이 돌아왔다.

 은파요.”

 언젠가 꼭 이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며 누군가가 지어주었지만 지워진 이름을 아이는 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생활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어리고 작았던 그는 어느 새 소년이 되어버렸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은 저녁을 먹던 도중 그녀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은파야.”

 닭다리를 뜯던 그는 무슨 일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로 답을 했다.

 우리, 마을 가서 살까?”

 커헉!”

 갑작스런 질문에 먹던 고기가 걸렸는지 급히 물을 마시고는 가슴을 몇 번 두드리던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니, 언제까지고 여기서 살 순 없잖아.”

 왜 같이 계속 못 사는데요?”

 사실 안 될 것도 없긴 하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하는 의문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을 찾긴 했다.

 같이야 계속 살면 되긴 되지. 하지만 너도 있는 겸 해서 나도 오랜만에 나가고 싶달까.”

 아이를 키우며 정말 부모의 마음이라도 갖게 된 것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그녀는 결국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순수하게만 자라서 그런 걸까 아마도 뒹굴거리며 굴러가는 저 눈동자에는 오랜 시간 숲 속에서 살고 있는 나에 대한 고민이 가득 담겨있겠지.

 조금만, 고민해 볼 게요. 저랑 살기 지루해진 건 아니죠?”

 되도 않는 질문에 헛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그녀는 이미 답이 나왔단 걸 아는 지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닫혀진 창문과 문에는 덩굴들이 자랐고 그들이 간간히 시간을 보내던 마당은 나무로 가려졌다.

 진짜 나가고 싶어요?”

 왜 나보다 너가 더 걱정이니.”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 하더라도 아직도 마녀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으며, 마녀로 몰려 죽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마녀가 맞았다. 아주 명백하게 확실한 마녀이다. 그런 그의 걱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레플은 은파의 등을 툭툭 쳤다.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까?”

 어린 게 별 걱정을 다 한다면서 픽 웃은 그녀는 손을 뻗어 곱슬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아이의 키는 어느새 그녀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머리에 손이 닿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 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다는 듯이 두 눈에 걱정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딱히 그건 아니지만-”

 그녀가 숲의 마녀로 이름을 떨쳐도 그 누구도 숲에 들어와 그녀를 잡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또한 같이 생활하며 그녀의 능력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마녀의 아이로 몰릴 수 있는 자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도, 나도, 내가 충분히 지킬 수 있어. 그럼 가자.”

 그의 걱정에 그저 마주 웃은 채 아무 걱정 말라며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내기 위해 가벼운 짐이 들어있는 배낭을 제외하고 모든 짐을 허공 어딘가에 쑤셔넣은 그녀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은 어느새 저 멀리 앞서기 시작했고 그 뒤를 허겁지겁 따르는 달음박질이 숲 속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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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의 마지막 날에

 따르릉. 울리는 시계 소리에 손을 더듬어 볼록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자 시끄럽게 울려대던 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들어낸 손을 그대로 얼굴께로 가져와 두 눈을 몇 번 비비적거려 남아있던 잠결을 쫓아낸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벽 6. 몇 년 동안 지켜온 기상시간에 재깍 일어난 그와는 다르게 하늘의 시계는 겨울이라 늦잠을 자고 싶은 건지 여전히 방 안도, 창문 밖으로 비추는 세상도 아직은 어두컴컴했다.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거려 등을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방 밖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기대있었을까 으쌰 하고 일어난 그는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닫힌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노란색의 빛과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 그리고 약간의 따스한 수증기가 전부였다. 짧은 머리를 감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지 개운한 표정으로 씻고 나온 그는 옷을 대충 걸치고는 냉장고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뭐 먹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손에는 어제 먹다 남은 국과 찬거리가 들려있었다. 그릇에 쌓인 랩을 벗겨내어 전자레인지에 놓고 밥과 반찬을 꺼내 한 상을 차리자 어느새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따끈하게 데워진 국의 냄새가 솔솔 배어 나왔다.. 앉은 채로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을 해치워버린 그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는 이번에는 제대로 옷을 갖춰 입었다. 여름철과는 다르게 평소에 입던 제복 위에 이것저것을 더 걸치자 어느새 방 안에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닌 털 속에 파묻힌 곰 한 명이 서있었다. 평소에도 큰 흉통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챙겨 입으니 더 그런 거 같네. 그렇지만 목에 둘러진 목도리도, 귓가를 감싸고 있는 귀마개도 하지 않는다면 날씨는 고사하고 쏟아질 잔소리가 상상이 돼 그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섰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닫힌 문을 뒤로하자 세상에는 하얀 눈이 한가득 내려있었다. 아직도 오르지 않은 태양 덕에 남색의 빛을 유지하고 있는 하늘과 대조되는 투명한 눈이 집 앞부터 시작해서 길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올해는 추위가 늦게 온다더니 늦장 부리던 추위가 이제야 몰아 닥쳤는지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밤새 변해버린 풍경을 충분히 눈에 담았다고 생각했는지 외투에 넣어둔 장갑을 꺼내 끼고서야 걸음을 옮기는 그의 머리 위로 가로등의 빛이 간간히 스쳐 지나갔다.. 푹푹 꺼지는 발을 들어 큰길로 나서자마자 자기보다 좀 더 부지런하게 아침을 맞은 사람이 있었는지 길에는 누군가가 열심히 빗질을 한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평소처럼 뛰어갈까 싶다가도 혹시 모를 장판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그는 뛰려던 뒤꿈치를 내려놓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빠드득 빠드득 우그러지는 얼음을 느끼며 길을 나서자 하나 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여직도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해를 대신해서 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가게의 불빛이었다.

  “어여, 좋은 아침.”

 한파가 불어 닥친 아침에도 신문배달은 쉬지 않으시는지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분께서 인사를 건네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운전 조심하세요.”

 그의 답에 걱정하지 말라며 호탕하게 웃고는 다시 창을 올린 그는 금세 저 멀리 사라졌다. 또 다시 걸음을 옮기자 서너 달 지나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이라고 곳곳에서 아는 체하는 사람들의 인사가 들려왔다. 대부분 찬거리와 재료를 파는 분들의 인사라 더욱 익숙한 얼굴에 그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사를 받아도 여유롭게 도착한 그는 대로변 옆의 파출소로 들어갔다. 형광등을 키고 자리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자 어느새 시간은 오후 12시를 지나 순식간에 저녁을 향해 달려갔다. 갑작스레 쏟아진 일감을 처리하고 들어온 민원을 처리하러 동네 순찰을 나갔다가 어르신들 말벗 좀 해드리고 돌아오자 어느새 해가 떠버렸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나보다 늦게 출근해서 먼저 퇴근하네.”

 가볍게 웃으며 의자에 걸쳐있는 옷가지를 하나 둘 주섬주섬 입자 어느새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평소처럼 주고받은 인사에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잠시간의 침묵이 실내에 떠돌았다.

 “내일 11일인데, 공휴일에 출근하시려고요?”

 “설마요, 오늘 말일이지 맞다. 연말 잘 보내세요.”

 유리문을 밀고 나오자 아침과 똑같이 어둑해진 풍경에 하얀 입김이 그를 맞았다. 또다시 외투에서 장갑을 꺼내 끼려던 찰나 호주머니 안쪽에서 짧은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따뜻한 손으로 후다닥 핸드폰을 켜 확인해보니 이제 막 다들 퇴근했는지 메시지가 와있다는 알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이치 생일 축하해.

 짧게 보낸 메시지서부터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고 보냈는지 혼자서는 못 쓸 만한 장문의 축하 메시지까지 여러 통의 문자들이 쌓여있었다. 그 짧다면 짧은 문장에서도 어쩜 그리도 성격이 잘 보이는 지 꼭 귓가에 대고 소리치는 시끄러운 문자를 보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차올랐다. 그렇다고 길가에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는 문자 하나하나에 답을 보내기 시작했다. , 고마워. 별 일은 없지. 올해에는 혼자 보내지 않을까 싶은데. 아냐 말만으로도 고마워. 감기 조심해라. 언제 한 번 갈게. 받은 만큼의 마음에 답하고자 열심히 액정을 두드리는 그의 손길이 바빴다. 답장을 보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확인을 하고 그가 핸드폰을 보고 있을 거란 확신이 있는지 한차례 다시 울리는 알람을 확인하자 케이크와 커피, 혹은 햄버거 세트 교환권 등등이 하나 둘 차곡차곡 쌓였다.

안 보내도 된다니까? 급하게 연락을 보내자 얼굴도 못 보는데 어때 라는 태평한 답들만이 돌아왔다. 매년 챙겨주는 씀씀이에 고맙다며 답을 한 그는 일단 케이크를 교환하기 위해 근처의 가게들을 떠올렸다. 평소 순찰 돌던 습관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픽하고 웃은 그는 집과 직장 근처의 빵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오세요~”

 벌써 연말을 축하하려는지 대부분의 케이크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혹시 이거 이걸로도 교환되나요?”?”

 “가능합니다.”

 “그럼 이걸로 하나 주세요.”

 가장 무난한 생크림 케이크를 선택한 그는 필요한 건 더 없냐는 직원의 물음에 초 하나만을 부탁한 채 가게를 나섰다.

 손에 든 케이크를 놓칠까 조심조심 집으로 들어온 그는 식탁 위에 케이크를 두고는 아침에 한 행동을 그대로 반복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증기를 뒤로하고 상자에서 꺼낸 케이크를 식탁에 조심히 올려놓은 그는 초 하나를 꽂은 채 작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고, 그는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그렇게 고마우면 노래 부르는 영상이나 찍어 달라 해 보내준 동영상은 어느새 한 바퀴를 돌았는지 벌써 핸드폰 상단은 온갖 웃음소리와 함께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주장 왜 그렇게 쓸쓸해 보여요. , 누가 가서 다이치 옆에 좀 있어줘라. 다이치 울어?

He's writing/1차 창작

이름 없는 그들 이야기-밤손님

 가로등의 백열과 휴대폰의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한데 섞여 있는 방의 침대 위에 누군가가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무언가라도 있는지 우측 상단에 있는 전자시계를 이따금 흘긋거리며 관심도 없는 화면 속 세상을 몇 번 보고 있던 그는 화면이 검게 변하며 누군가의 이름이 화면에 뜨자 빠르게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고요한 이곳과는 다르게 여전히 바쁜 사람들이 사는 세계인 듯 시끄러운 소리가 전해 들어왔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 혹은 웃음소리, 그리고 아직 밖임을 증명하는 듯한 바람 소리까지 뭐 하나 잊지 않고 그 좁디좁은 곳으로 빨려 들어와 그의 귓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바쁘게 걸어가는 걸음 속에서도 휴대폰을 어깨에 끼고서 걷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어느샌가 자그마한 미소가 입가에 걸쳤다.

 "응, 자기야."

 남아있던 미소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은 채 목소리를 타고 전달이 되었는지 상기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소리를 냈다는 것을 본인도 알아차렸는지 그는 머쓱함에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하고 있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연락을 주고받으며 무엇을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알아냈건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그는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그런 제 애인의 질문이 지겹지도 않은지 낮게 큭큭거리며 웃던 목소리는 지금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털어놓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어떤지,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묻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해주는 그의 목소리에 누워있던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비록 옆에 있지는 않더라도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작금의 상황이 꽤 만족스러운지 그의 입에서는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작다고 생각했던 그 웃음소리를 용케 들었는지 전화 저편에서 뭐가 그리 좋냐는 물음이 건너왔다. 자기는 지금 혼자 길거리를 걷느라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불퉁한 말과 함께. 생긴 건 자기보다 훨씬 무뚝뚝하게 생겨서는 이렇게 드문드문 던지는 말들은 어찌나 귀여운지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나도 딱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냐고? 침대가 너무 넓다는 생각? 혼자 쓰니까 너어무 넓은 거 있지." 

 둘이 누울 때는 꽉 찬 것만 같았는데 혼자 누우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도 왜 이리 넓은지 두 팔과 다리를 쭉쭉 펴도 남는 공간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 한편이 같이 비워진 느낌에 괜스레 베개만 껴안고 있던 시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슬슬 자기 냄새도 안 나."

 옅으면서도 시원한 향이 나던 베갯잇에서는 더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게 되었다. 항상 머리를 감고 나서 대충 털털 말리고는 풀썩 눕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말려주곤 했었는데.

 "보고 싶다. 자기도 나 보고 싶은 거 알지."

 짧은 침묵 후에 결국 웃음 아래에 미뤄뒀던 속마음이 새어 나왔다. 상대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말이 부담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내 숨겨왔던 말을 내뱉고 나자 그동안 눌러왔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감정이 차올랐다. 보고 싶다. 자기가 너무 보고 싶어. 날숨과 함께 가볍게 흘러나간 속삭임이 방 안을 잠시 맴돌다 사라졌다. 그 말이 사라지는 잠깐의 공백이 있고 난 뒤 갈까 하는 짧은 대답 겸 질문이 돌아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야, 올 수 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 쳐져 있던 그는 어디로 갔는지 벌떡 일어난 그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양말과 의자에 걸려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 가득 빨랫감을 집어 들어 세탁기에 쑤셔 박은 그는 시선을 들어 방 안을 훑었다. 이미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지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도착한다는 말이 들렸다. 먹고 치우지 않은 비닐봉지와 접시들을 정리한 그는 급한 불은 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애인은 자주 가는 집 근처 빵집에서 그가 즐겨 먹는 빵을 사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고 있었다.

 "진짜? 그거 사 올 수 있어? 거기 줄 서서 사야 될 텐데."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하지도 않고, 속에 들어간 잼이 마지막은 혀를 달달하게 감싸는 빵을 상상하자 어느새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약간은 늦은 시간이지만 직장인들이 퇴근하며 자주 들르는 탓에 이 시간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알고 있는 그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고민은 너털웃음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눈 녹듯 사라졌다.

 "응. 사와 사와. 와서 마실 거랑 같이 먹으면서 붙어있자."

 냉장고에 마실 게 있던가. 차를 미리 준비해둬야 할까. 늦저녁의 깜짝 손님으로 인해 분주해진 생각들을 정리하며 그는 조금 후의 미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의 애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훤히 아는지 그의 웃음이 들렸다. 그렇게 좋아. 별것도 아닌 일에 그리도 행복해하는 그가 귀여운지 그가 웃음기 띈 질문을 던졌다. 

 "응.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다. 이번엔 뭐 볼래?"

 벌써 그의 머릿속에서는 영화가 나오는 노트북을 침대에 앉아 보는 둘의 모습이 떠다니고 있었다. 각각 빵과 컵을 손에 든 채 우물거리는 둘의 모습이, 그러다 허리에 드문드문 다가오는 손에 의해 그의 옆으로 좀 더 당겨지는 그의 모습이.

 "알았어. 찾아둘게. 얼른 와."

 약간의 재촉을 끝으로 통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좀 더 방을 정리하고 나자, 현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빵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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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스급] 노아

*날조 주의

*연성 키워드: 차이나 드레스, 안약 

한 사람, 두 사람

 그는 차가운 눈으로 시야 속에 들어오는 사람들의 수를 조용히 셌다. 그런 그의 눈길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은 그저 자신들끼리의 대화에 빠져 웃고 떠들기에 바빴다.

 기다란 금발을 한 번 더 매만지며 서있는 그의 몸은 차이나 드레스로 가려져 있었다. 낭창한 몸매를 가린 차이나 드레스는 붉은 비단 위에 금빛용이 수놓아져 있어 누구든 한 번은 돌아볼 법 하건만 그 많은 사람들 중 누구도 그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했다.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곳곳에 진미가 펼쳐져 있건만 정작 그는 연회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지 지루하다는 듯 눈을 감고 있었다.

몇 곡의 노래가 귓가를 지나고 사람들의 목소리가 좀 더 높아지려는 그 때, 그의 귓가에 짧은 진동이 울렸다. 샹들리에의 불빛에 비춰 반짝이는 귀걸이가 짧게 떨자 그는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 보고는 벽에서 등을 뗐다. 비단을 신은 듯 바닥에 스치는 소리조차 없이 빠르게 걸어간 그는 목표물을 시야에 담은 채 잠시 발을 멈췄다. 그리고 품에서 자그마한 안약을 꺼내들은 그는 자신의 눈을 향해 투명한 액체를 몇 방울을 떨어트렸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진 액체가 동공에 닿자 연회색의 눈동자는 자신의 색을 바꿨다. 그리고 몇 번 눈을 깜박이자 그 곳에는 보랏빛 눈동자를 지닌 한 여성만이 서있었다. 누구든 홀릴 수 있는 외모의 소유자는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은 채 찬란한 빛의 아래로 걸어 나갔다.

 금빛을 가득 머금어 눈이 부시게 물결치는 머릿결은 허리까지 내려와 윤기를 자랑했고, 붉은 빛의 드레스는 움직임이 불편하지 않도록 적당한 폭을 유지하며 발목까지 내려왔다.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존재감은 옅게 지워버린 채 그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무리에 녹아들었다.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며 건네주는 칵테일은 그 자리에 맞게 훌륭한 맛을 자랑했다.

 ‘, 하나 가져가고 싶은데 없겠지?’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르는 임무를 수행 중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머릿속에는 벌써 돌아가 웃고 떠들 자신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짧은 상념을 깨운 것은 손목에서 잘게 우는 시계의 알람이었다. 피부의 감촉으로만 느낄 정도로 작게 울은 시계가 채 진동을 멈추기도 전에 그의 발은 어느새 목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칠 일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웃고 있는 목표의 옆을 지나며 그는 자신의 손을 잔 위로 지나게 했다. 그대로 조용히 지나간 그는 자신의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자리를 빠져나왔다.

 “끝냈어요.”

짧게 임무의 완료를 마친 그의 말이 마치자마자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았다.

-정체는

 “안 들킬 거에요.”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는 빙긋이 웃으며 말을 마쳤다. 그리고 그 말과 동시에 연회장에서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남녀 구분 없이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음은 노아와 그의 앞에 서있는 사람의 귀에 내리꽂혔다.

 “누구,”

 채 말을 마치지 못한 채 그는 급하게 몸을 숙여야했다. 그리고 머리 위로 스쳐가는 손날에 그의 머리카락 몇 올이 허공을 날았다.

 “최소 S, 금색의 장발에 바이올렛 색 눈, 격투 중심의 능력자다. 파악해.”

 그나마 이런 일에 익숙한지 빠르게 정보를 파악하는 그는 통신기에 대고 자신이 알아낸 것들은 전해주었다. 그리고 모든 지시사항이 전해지자마자 그의 통신기는 독에 의해 녹아 없어졌다. 갑작스런 사건에 눈을 동그랗게 뜬 그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은 노아는 손에 든 기기를 녹여 없앴다.

 “등급 말고는 하나도 못 맞췄네. 그러니 제 주인도 못 지키지.”

 그리고 부족한 가드의 눈에 마지막으로 보인 것은 괴수의 것으로 변한 손이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었다. 분명 약하지만은 않을 피부임에도 불구하고 종잇장처럼 피부에 박힌 손을 조용히 빼며 그는 자리를 떴다.

 공간을 가득 채우는 구둣발 소리를 뒤로 하고 옥상으로 향하는 문을 연 그는 차가운 밤공기를 한가득 받아들였다. 몸을 숙인 그는 자신의 허벅지부터 손톱을 내리세우며 쭉 그었다. 몸을 감싸고 있는 비단이 찢어지며 새하얀 피부가 달빛에 드러났다. 새하얀 피부 밑의 근육에 살짝 힘이 들어가자마자 어느새 누가 있었다는 양 옥상에는 휑한 바람만이 불었다.

자신을 찾는 고함소리를 뒤로 한 채 씨익 웃은 그는 까만 밤하늘을 빠르게 가로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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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유진] 눈치

 “오늘 약속 있어요?”

 한유진은 간단한 식사를, 둘이 합쳐 토스트 4개와 여러 종류의 과일 그리고 시리얼 두 그릇이지만, 마친 후 그릇을 정리하는 등을 향해 별거 아닌 질문을 던졌다.

 “, 저녁에 약속 있어.”

 달그락 거리는 소리는 끊기지 않은 채 계속 이어졌다.

 “그 전에는 시간이 나요?”

 쏴아아하고 내려오던 물소리가 끊겼다.

 “오늘 강의가 2개고, 빈 시간에는 과제하러 가야될 것 같은데. ?”

 바로바로 나오던 그의 대답과는 다르게 그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 사이에는 긴 공백이 그 사이를 채웠다.

 “아니에요. 그럼 오늘 늦게 들어오겠네요.”

 “아마 그럴걸.”

 결국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한 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알겠어요. 저 먼저 가볼게요.”

 “같이 안 가?”

 어느새 신발을 신고 있는지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현관에서 나기 시작했다.

 “, 오늘 좀 일찍 가야 되서요.” 

 그 말을 끝으로 쾅 닫힌 현관문은 집 안에 정적을 채웠다.

 

 시끌벅적한 복도를 지나 강의실의 문을 열자 저 멀리 동그란 까만 머리통이 눈에 떡하니 박혀들었다. 항상 같이 나가던 자취방을 혼자 나오며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던가. 하지만 뚜렷한 답을 찾지 못한 채 아직도 제 애인의 행동을 이해 할 수 없는 송태원은 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등 뒤에 맨 백팩을 내려놓으려는 것을 어느 목소리가 막았다.

 “선배, 거기 제 자리에요.”

 그 말에 고개를 내려 보자 이미 펴져있는 책과, 필기구. 그리고 분명 한유진의 것이 아닌 파스텔 톤의 가방이 의자에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 미안.”

 당황감이 온 몸에 가득 퍼졌지만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다른 빈자리를 찾아 몸을 돌렸다. 하지만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는지 그의 손가락 끝이 움찔거렸다. 자신을 덮고 있던 거대한 몸의 그림자가 머리 위를 지나 사라질 때까지 한유진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은 채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 솔직히 말해봐. 무슨 일 있었지?”

 “아니. 별로.”

 별로라고 말하는 그의 표정은 전혀 아무 일이 없던 사람은 아니지만 싸하게 내려앉은 눈동자에 그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은 채 의자에 앉았다.

오랜만에 한유진과 떨어져 앉은 송태원은 강의시간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니 못하진 않았다. 그저 시선의 끝이 교수와 그 앞에 있는 한유진의 뒤통수를 향해 왔다 갔다 했을 뿐이었다. 평소 잘 들어오던 교수님의 강의가 오늘따라 귓가에 맴돌 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강의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

 “, 먹으러 갈래?”

 “유진이 오늘은 저랑 먹기로 했어요~”

 뭐가 그리 좋은지 팔에 찰싹 붙어 한유진을 끌은 그는 어느새 강의실을 나가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졌다.

 

 “진짜 무슨 일인데 수업 시간 내내 죽상이냐.”

 “아니라고.”

 밥을 먹지도 않은 채 그저 젓가락을 깔짝거리고 있는 그를 보며 그의 친구는 결국 들고 있던 숟가락을 머리통을 향해 휘둘렀다.

 “밥도 안 먹으면서!”

 평소 밥을 챙겨 먹는 걸 매우 중시하는 그가 음식에 손은 대지도 않은 채 깨작거리고 있는 모습에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뭔데. 말해봐.”

 “오늘,”

 잠시간의 만담이 오간 이후, 그는 적당히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 아무래도 아니지 않을까?”

 “그래도 벌써 오늘이 다 지나가는데!”

 “저녁도.

 “약속이 있으시단다!”

 자기가 생각해도 억울한지 한유진의 입에서는 소리가 빽하고 나왔다. 새되게 나온 목소리에 사람들의 이목이 잠시 집중되었지만 주변의 소음과 함께 금세 사라졌다.

 “그래. 송태원 선배라면.”

 송태원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성실과 책임이었다. 교내의 커다란 일의 진행에는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고, 회의에도 빠지지 않은 채 모든 일을 진행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래도 설마 선배도 처음 일텐데, 그럴까.”

 

 평소에는 그리도 눈에 잘 들어오던 자그마한 몸이 오늘 따라 왜 그리도 안 보이는지 그는 하루 종일 시선을 한 곳에 두질 못했다. 하지만 언제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한유진은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길 위를 가득 채운 노을빛 속에서 그는 마지막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지금 가야 해. 안 그럼 늦어.”

 종일 자신을 피하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무겁게 디뎠다. 그리고 뒤돌아선 그의 눈앞에 까만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약간의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송태원은 그림자의 주인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잠시만.”

 낮은 목소리로 일행의 움직임을 멈춘 그는 재빨리 그림자의 위를 밟았다. 그리고 그림자의 끝에는 붉게 물든 눈과 앙 다문 입술이 있었다. 이를 본 그의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무슨,”

 말을 하려 했지만 끝나기도 전에 쏘아져오는 눈길에 그는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진짜 오늘 회의 가요? 그리고 나 잘 때 돼서야 들어오고요? 오늘 무슨 날인진 알아요?”

 하루 종일 그 말을 다 어떻게 참았는지 쏟아져 나오는 말에 송태원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짧으며 긴 시간이 지난 후 그는 결국 하나의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미안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확실히 알 때 나오는 그의 어투에 한유진의 눈매에 변화가 생겼다.

 “근래에 너무 바빠서, 아니 미안합니다. 이런 걸 잊으면 안 되는 건데.”

 변명조차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미안함을 전하는 그의 말에 다문 입술이 열렸다.

 “바쁜 거 나도 알아서 차마 물어보지도 못하겠고, 이런 마음이 드는 게 옹졸하진 않나 싶어서 말도 못하겠고.”

 평소 자신의 생각을 잘 말하지 않는 한유진의 성격 상 하루 종일 고민했겠다 싶은 마음에 송태원은 손을 들어 한유진의 눈가를 훔쳤다.

 “가자.”

 살풋 눈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가자는 그의 말에 오히려 한유진의 눈이 커졌다. 그저 조금 일찍 올 줄 알았던 그는 자신의 생각 이상의 결정에 말을 잇지 못했다.

 “저 오늘은 집에 일이 생겨서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가 벙쪄있는 사이에 일을 끝내고 온 그는 여전히 길 위에 서있는 한유진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늘 먹고 싶은 거 있어? 케이크 사갈까?”

 이것저것 물으면서도 놓지 않는 손에 한유진의 입가에는 슬며시 미소가 피어났다. 그렇게 그들의 백일의 기념일은 그 어느 날보다 달달한 향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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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writing/2차 창작

[노아유진] 새벽의 아름다움에 대해.

 비록 거리의 가로등이 맘껏 들어오지는 못했지만 거실은 빛과 어둠이 적절히 섞인 어둠으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리고 24시간을 꽉꽉 채워 사용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어둠의 품 속에서 다음 날을 위해 다른 세계로 빠져들어있었다. 그렇게 밤의 주인공만이 제 안에서 자는 사람들을 보살피고 있는 누구의 기척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상황에서 간간이 동물들의 울음소리만이 공간을 채웠다. 평소 밤만 되면 깨어나 움직이던 코메트를 유진이 오늘만큼은 편히 자야겠다며 사육장으로 보냈고, 같이 살던 동거인들은 S급 던전의 공략을 위해서 며칠간 집을 비웠다. 그 결과 집에 사람이라고는 집주인과 금색의 용으로 변할 수 있는 두 명밖에 남지 않았다.

휑하니 비어버린 난 자리를 느낄 법도 하건만 그런 것 하나 없이 잘 지내던 금색의 용이 평소에 자던 거실의 소파 위에서 눈을 떴다감겨있던 눈이 떠지자 뜨자 새벽의 구름을 옮겨 담은 듯한 눈동자가 드러났다. 연회색의 눈동자가 빠르게 두세 번 꿈벅이더니 그 사이 눈 안의 졸음을 다 몰아냈는지 어느새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 곧 해가 뜨려 하는지 저 멀리 건물들 너머로 새어 나오는 주황빛의 띠가 땅을 감싸고 있었다.

 ‘어제 너무 일찍 잤나.’

 모처럼 일이 없던 유진의 스케줄에 해가 떨어지기도 전에 모든 일을 마치고 가볍게 저녁을 먹고 들어온 유진은 그동안의 피로를 풀겠다며 이른 시간에 잠자리에 들었다. 노아 자신이야 웬만한 일에 피로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이 집의 주인은 다른지 그 누구보다 빠르게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하루에 돌보는 몬스터의 숫자만 하더라도 충분히 힘들 법도 한데, 동생이 자리를 비운 사이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감시가 붙지 않은 지금이 최적이라며 돌아다니더니 결국 피곤하다며 선언을 한 것이다. 물론 그의 성격상 그 누구에게도 대놓고 피곤하다며 말은 하지 못했지만 하루 종일 두 눈을 비비며 하품을 하는 모습이 노아의 눈에 자주 들어왔다.

깨자마자 떠오른 그와의 하루가 사라지고 나서야 그는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들어있던 몸의 감각을 깨우자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그 무엇도 아닌 침실에서 고르게 숨을 들이마시고 있는 유진의 잠꼬대였다.

 “우리 피스 착하네.. 삐약아 마석, .”

 미처 말을 끝내지 못하고 다시 잠자리로 끌려가버렸는지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자신이 키우는 생명들이 그리도 좋은지 꿈에서조차 만나고 있는 유진의 모습에 노아의 입술에는 작게 초승달이 그려졌다.

 자고 있을 유진의 모습이 그려지자 보고 싶은 마음이 커져버린 노아는 조용히 침실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자신의 기척이 느껴져 깰 리는 없겠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소보다 조심해서 걸어갔으나, 방으로 들어오는 노아의 모습에 유진의 품에 있던 피스의 두 눈이 갸름하게 떠졌다. 하지만 조용히 하라며 검지를 입가에 가져다 대는 그의 모습에 별다른 행동 없이 다시 스르륵 눈을 감았다. 작은 동물의 행동에도 잠시 멈칫한 그는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침대가의 끄트머리에 도착한 그의 눈에 붉은 털 뭉치를 끌어안고 자는 유진의 모습이 들어왔다. 입을 쩝쩝 다시며 뒤척이는 그의 입술에서 시선이 동그란 머리로 옮겨졌다. 한 번만 만져보고 싶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머릿결을 향해 뻗어지던 손가락이 채 검은 결에 닿기도 전에 다시 거둬졌다. 근처에 다가가지도 못했던 오른손을 왼손으로 꼭 붙잡은 채 그저 자는 유진의 모습을 지켜만 보는 노아의 가슴 한편 이 찌르르 울렸다. 언제쯤 나는 아무렇지 않게 이 손을 뻗을 수 있을까요.

 차마 내뱉지 못한 문장이 입안에서 녹아내려 다시 그의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던 말 대신 노아의 입에서는 다른 말들이 하나 둘 꺼내지기 시작했다.

 “유진씨, 저는요. 요즘이 너무 좋아요.”

 한 음 한 음에 자신의 마음을 가득 담고 싶었는지 그는 천천히 첫 번째 문장을 뱉었다. 노아 자신의 인생은 한유진이라는 사람을 만났을 때와 만나기 전으로 나뉜 듯했다. 하나뿐인 혈육마저 자신을 혈육으로 대해주지 않는, 그 누구도 자신을 노아라는 사람으로 보아주지 않던 세상이 그를 만나고서 달라졌다. 나를 나로 봐주는 사람. 그 존재의 의미를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뒤바꿔버린 존재에게 다른 마음 또한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도 있었다.

 “유진씨를 만나기 전까진 그 누구도 내게 그런 말을 해주지 않았어요.”

 무엇을 하든 노아의 탓이 아니라고, 자책할 필요가 없다며 고운 말을 하는 유진의 모습이 잠시 떠올랐다 사라졌다. 또 누가 그에게 말을 잘못하여 상처를 주지 않았나 신경 쓰며 한 마디 한 마디의 말을 고르고 골라 그에게 건네주는 그의 모습이 노아는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계속해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유진의 집에 들어와 살게 된 이후 그의 세상은 다시 한 번 완벽히 뒤집혔다. 그저 누군가와 단둘이 마주 앉아 먹는 음식이 그렇게까지 맛있을 일인가를 그는 알지 못했었다. 누군가를 등 뒤에 태우고 어딘가를 향해 날아갈 때 느껴지는 바람이 그렇게도 시원한 감촉을 선사해주는지를 그는 여태 알지 못했었다. 하루의 일정이 끝나고 집에 들어설 때 집안 곳곳에 배인 타인의 향이 자신의 기분을 이렇게 만들 수 있을 줄은 그는 단 한 번도 예상해 본 적이 없었다.

 “유진씨 덕분에 저는 드디어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기뻐하며 사는 매일을 살고 있어요.”

 그리고 이 모든 건 유진, 한유진으로 인해라는 말로 시작되어야지만 저에게 의미를 가져요. 당신이 없었더라면 제 인생은 아마 앞으로도 의미를 가지지 못한 채 지나갔겠죠.

 잠들어있기에 들을 리 없건만 유진의 귓가가 잠시 움찔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그 모습마저도 너무나도 좋은지 노아의 심장은 좀 전보다 살짝 빠르게 두근거렸다.

누군가에게 특별한 감정을 가진다는 게 이리도 행복한 일인 줄 알았다면 좀 더 일찍 당신을 만났을 것을. 하지만 그런 후회도 잠시, 어느 때가 되었든 만났으면 되었다는 생각이 잠시 우울해지려던 그를 붙잡아 진정시켰다.

아직은 새벽의 공기가 쌀쌀하기에 저 아래로 밀쳐진 이불을 가슴께까지 덮어주고 나온 그는 베란다로 향하는 창문 앞에 가 섰다.

언제부터였을까, 예쁘게 반짝이는 샛별의 아름다움에 취해 하나하나 눈에 담기 시작했던 것은.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또한 이 집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라는 걸 그는 알 수 있었다. 그저 반짝이게 웃는 그의 미소와 같은 것들을 찾다 보니 그의 눈은 어느샌가 예쁜 것들을 찾기 시작했다. 미소가 이쁘다는 노아의 말에 유진은 오히려 노아의 미소가 더욱 밝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의 눈에는 자신의 미소보다는 왠지 모르게 현재에 대해 만족해하는 그의 미소가 더욱 아름답게만 보였다.

그리고 그의 옆에 있으면서 조금씩 변해가는 자신을 볼 때마다 노아는 반짝이는 걸 찾는 것이 변해가고 있는 자아의 투영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제가 유진씨 덕분에 새로운 것에 눈을 뜬 게 이런 걸로 보이는 걸까나요.’

 오늘 또한 어김없이 제게 햇살 한 줄기를 나눠준 그가 생각나자 그의 두 볼은 날이 덥지도 않건만 애틋이 달아올랐다. 후끈거리는 볼을 진정시키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창문 위로 순간 그가 좋아하는 사람의 미소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잘못 본 건가 싶어 놀라 다시 바라보자 자신이 그리도 어여뻐했던 표정을 지닌 자신이 창 앞에 서있었다.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볼이 누군가에게 보일 리도 없겠건만 부끄러운지 두 손으로 볼을 감싸 쥔 그는 다시 침실로 들어갔다.

덮어주었던 이불은 그새 어디로 팽개쳤는지 전신을 드러낸 채 자고 있는 그의 모습에 결국 노아의 입에서는 막지 못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예쁘네요.”

 자신이 말해놓고도 믿기지 않았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입을 틀어막은 그는 그대로 쪼그려 앉았다. 강하게 뛰는 감정의 소리가 그에게 들리지는 않을까 무릎을 그러모은 채 침대의 옆면에 몸을 기대앉은 그는 그렇게 두 눈을 감았다.

 “요즘 제게 아름답지 않은 걸 찾기가 너무 어렵네요.”

 더 이상 사치가 아니게 되어버린 고민에 행복한 미소를 지은 그의 두 눈이 편안히 감기기 시작했다. 어둑하게 눈을 감아도 보이는 누군가의 모습에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잠들었다.

지금 보고 있는 당신이 제게는 그 어느 무엇보다도 몇 배는 아름답게만 보이네요.

 어느새 부지런한 해가 떠오르고 햇살이 방안 모두의 눈가에 내려앉을 때가 되어서야 일어난 유진은 손을 위로 쭉 뻗었다. 그리고 생각 없이 내린 손끝에 닿은 이상한 감촉에 제대로 뜨지도 못한 두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아씨! 왜 여기서 자요!”

 다급한 외침에 같이 눈을 뜬 그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배시시 웃어 보일 뿐이었다.

 “, , 그냥.”

 유진씨 옆에 있고 싶었어요.

오늘 또한 제 안에서 만들어진 문장을 뱉을 용기가 없는 그는 또다시 웃어 보이기만 했다.

 “괜찮아요. 이 정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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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writing/FF14

FFXIV Character_한아율

†한아율(憪_兒律)

애칭-율

 

Main job  음유시인, 점성술사

 

나이         22세


캐릭터 설명

 주로 토벌하기 힘든 야만신이 소환되는 곳에 자주 나타난다는 음유시인. 아무도 토벌하지 못하는 야만신을 잡는 것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의외로 풍경이 이쁜 장소에서 잘 보인다고. 전투에선 적을 섬멸하겠다는 의지만 볼 수 있는 그가 전투 후에는 누구보다 평화를 추구하며 살기 때문일까, 그 밝은 얼굴 뒤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뒷말이 간간히 돌기도 한다. 

 그가 애용하는 무기는 활과 천궁도이다. 어렸을 적부터 쥐어왔던 활에 비해 별의 힘은 그리 잘 다루지는 못하는 편이다. 

 황금의 화살인 '찬란한 화살'과 유성이 쏟아지듯 꼬리를 물며 떨어지는 '천상의 화살' 과 '절대 음감'은 단 한 번도 적의 목을 꿰뚫지 못한 적이 없다. 숨이 벅차오르지도 않는지 전장을 뛰어다니며 부르는 목소리는 아이같지만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게 진중한 가사를 가졌다고 같이 싸운 모험가들은 입을 모아 말을 한다.

 그리고 주로 '별읽기:베네피크'는 전투 후에 치료를 제 때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나 천궁도를 꺼내서 쓴다. 마물과 싸우고 돌아온 병사들이 있는 어느 막사에서는 베네피크를 너무 많이 써서 발 밑에는 빈 약병이 여러개 굴러다닐 때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픔이 덜어진 사람들이 카드로 간단한 점을 보거나 그와 함께 이야기를 하며 행복해 하는 게 좋아서 그만두지 못하겠다고 한다. 


성격 및 특징

  단순해 보이나 단순하지만은 않은. 직업의 특성 상 긍정적인 분위기를 많이 연출해야 해서 사소한 문제는 그리 깊게 고민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정말로 생각이 많이 필요한 일이 생긴다면 열심히 혼자 고민하는 편이다.

  밝고 활발하게 움직이는 편. 항상 웃고 떠들던 부모님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그 또한 어렸을 적부터 웃음을 잘게 터트리는 일이 많았다. 또한 돌아다니는 데 익숙해서인지 몸을 가만히 두기보다는 계속 움직이는 걸 더 편해 한다. 잠을 잘 때 빼고는 항상 무언가를 하려 하는 편이다.

  정이 많은 편. 그의 수많은 표정 중에 가장 슬퍼보이는 표정이 무어냐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마 웃는 눈가에 눈물이 매달려 있는 표정이라 답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감정이 풍부하다. 특히 고통에 처한 사람들을 볼 때 자기라도 행복한 얼굴을 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인진 몰라도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지만 결국에는 글썽거리는 눈물을 참지 못해 같이 울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먹을거라도 잘 먹으라며 수중에 별로 돈이 없는 경우에도 '또 벌면 되요.'라는 말 하나로 거절을 못하게 만들어 넘겨주기도 한다.

  미래를 신중히 준비하지는 않는 편. 자신의 발걸음이 닿는 곳을 걸어가는 게 그의 하루이기에 딱히 계획적으로 어딘가 향하진 않는다. 이런 생활로 인해 하루를 살아갈 때도 완벽한 계획보다는 삼시세끼를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정도만 고민한다. 경치 좋은 곳이 있다는 소리를 들어야지만 방향을 정해 가는 정도이다.

  의상은 항상 바뀌는 편. 옷을 맞춰입고 다니는걸 좋아하는 편이라 맘에 드는 의상이 있다면 옷 전체를 다 바꿔버린다.그 때문에 장터 게시판 앞에 서 있는걸 종종 발견 할 수도 있다고. 하지만 너무 예쁜 옷들은 비싸서 군침만 흘리고 있다. 돌고래 주점의 여관 방에서 한참 동안이나 나오지 않는다면 그건 필시 옷을 갈아입고 있다는 증거.

 화장은 하고 다니지는 않는 편. 그러나 피부 관리는 꾸준히 한다. 그리고 가끔 볼에 자그마한 하트 문양을 그리고 다닐 때가 있다. 이유를 물어보니 이쁘지 않냐며 볼을 한 번 부풀렸다고 한다. 타국의 염료라 자유롭게 그리고 지울 수가 있어 애용하는 편이라고.

  주 수입은 집사가 가져오는 것들. 그 외에 전투 후에 획득한 전리품이나 뜻밖의 경로로 얻은 그 무엇이든 돈이 되기만 한다면 100길이라도 판다. 요즘은 집을 사고 싶은지 열심히 원예 길드를 들락날락 하고 있다는 데, 자잘한 돈은 잘 모으지만 거출은 자제하지 못해 항상 돈이 없다고는 한다. 주로 음식을 먹거나 옷을 사는데 소비한다.

  좋아하는 것.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걸 매우 좋아한다. 마물들과의 전투가 잦은 만큼 특정 음식을 자주 먹어야 하지만 그 외의 음식들도 매우매우 잘 먹는 편. 살이 찌지않는 유일한 이유는 그만큼 많이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디저트 류를 많이 좋아해서 전투 전에 단 것을 먹는 다른 모험가들을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본다. 간간히 그 눈길을 저버릴 수 없는 맘씨 고운 사람들이 한 입씩 나눠주기도 한다고.

  사설. 여유로운 생활을 매우 좋아해서 날씨가 좋은 날에는 아짐 대초원의 한가운데서 누워있는 그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렇게 떠돌아 다니는 삶을 살지만 제 사람은 꼬박꼬박 챙기고 다닌다. 그리고 마음을 준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킨다는 마음으로 대하는 편이다. 그렇기에 주위 사람이 해를 입는 경우를 무엇보다 싫어한다. 어느 형태의 피해이든 당했다면 끝까지 쫓아가서 되갚아 주는 경우가 많다. 

 외로움을 잘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랫동안 살펴보면 오히려 사람이 많은 곳에 주기적으로 나타나는 걸 알 수가 있다. 남들 앞에서 웃을 수 없을 정도로 지쳤을 때나 한적한 곳으로 간다. 제 입으로 인정하기는 싫은 지 "사람 대하는 거 힘들어요."라고 말은 하지만 주변에서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을 뿐이다. 


† 과거 이야기

 떠돌이 음유시인 부부에게 키워진 라라펠 남자. 부모님의 말씀으로는 제 눈색을 선물로 주었던 어느 해안가에서 자기를 발견했다는데, 정작 본인은 아무런 기억이 없다. 동방의 이름을 가지고 있던 두 사람은 아이에게도 비슷한 형태의 이름을 주었다. 항상 여유로우며 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가지고 살라는 의미로 주신 이름에 여태 아무런 불만 없이 살고 있다. 그리고 그런 의미의 이름을 잔뜩 가져다 붙인 탓인지 정말로 쾌활하고 활발한 성격을 가지게 되었다. 

 음유시인인 부모님과 함께 에오르제아 곳곳을 여행다니며 저절로 음유시인의 직업을 가지게 되는 건 순리였을까, 어렸을 적부터 노래와 활을 좋아하던 그는 어느 정도의 나이를 가지게 되자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모험을 하겠다며 독립해 나왔다. 평소 걱정이 없던 부모님은 흔쾌히 다녀오라며 마지막으로 모닥불 앞에서 만찬을 즐겼고, 헤어진 후에는 간간히 모그레터를 통해서 서로 소식을 접하고 있다. 

 노래를 매우 잘 부르거나 하진 않지만 그의 화살이 목표물을 빗나가는 경우는 없다고 한다. 할 땐 제대로 해야 한다는 성격이 은근히 드러나서일까, 각지를 떠돌며 만나는 모험가들과 만담을 주고 받으며 웃다가도 활을 들어야 할 때가 되면 언제 웃었냐는 듯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이 된다. 누군가의 앞에서 싸우기보다는 뒤에서 원호를 하는 경우가 더 많기에 그의 목소리는 앞서있는 모든 이들의 귀에 항상 울려 퍼진다고 한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여행신의 무곡'. 자신의 여행을 이끄는 누군가의 존재를 떠올리며 직접 지은 가사를 붙였다고.

  그리고 어디를 가나 아파하는 사람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노래를 불러주는 것뿐이라 항상 가슴 한 구석이 무겁던 그는 이슈가르드에서점성술을 설파하는 것을 듣고 바로 점성술을 배웠다. 항상 밖에서 자는 습관이 들어서 그런가 밤하늘의 별을 노래만큼이나 좋아하던 그는 점성술을 통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해주며 돌아다니는 걸 소소한 낙으로 삼고 있다. 점성술을 배웠음에도 별을 읽어 길을 찾지는 못하지만 별 하나하나에 이야기를 붙여 노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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