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writing/1차 창작

붉은 실의 여행

 녹음이 우거진 나무 그늘 사이로 새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나뭇잎에 반사된 햇살은 장난스레 그녀의 눈가를 간질였다. 그녀 또한 그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는지 입가에 살풋 미소를 띄운 채로 걸었다. 발바닥에 스치는 여린 풀잎들은 아직 새벽의 이슬을 다 털어내지 못했는지 살결이 스쳐 지나갈 때 마다 제 흔적을 묻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나온 산책이라 그동안 닫아두었던 귀를 활짝 열자 평소라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어느한 구석에서 들렸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 그러다가도 울면 안 된다 생각하는지 막아보지만 새어 나오는 물기어린 소리. 자신의 숲에서 들릴리 없는 소리에 그녀의 발 끝은 어느새 소리가 시작되는 곳을 찾아 가고 있었다.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수풀이 무성하고 나무줄기가 얽기설기 얽혀있는 길을 손 끝으로 치우며 걸어가자 저 멀리 갈색의 덩어리가 보였다.

 ,흐엉..크흡!”

 더 가까이 다가가자 코를 먹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지 아마도 어깨로 추정되는 곳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아이?’

 자신의 숲은 이미 주변의 영지 내에서는 마녀의 숲이라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을 텐데 이런 어린 아이가 숲 한 구석에서 이러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얘야, 여기서 뭐하니?”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울고 있던 아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건들자 화들짝 고개를 돌렸고, 그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자 마자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울음이 그치고 3초 뒤.

 딸꾹, 딸꾹. , 하끅.”

 발목까지 내려오며 바람과 상관없이 흔들리는 새빨간 머리카락에 보랏빛과 남청색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 잠에 들지 못하는 밤에 유모가 간간히 들려주던 숲 속의 마녀의 외모와 흡사한 모습에 아이는 우는 것도 잊은 채 딸꾹질만을 반복했다.

 어머, .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두 눈동자에 제 눈 만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히는 걸 본 그녀는 깔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손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아이는 차마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가온 두 손은 눈을 꼬옥 감은 채 사시나무 떨 듯 있던 아이의 머리 씌워져 있던 망토를 벗겨 내렸다. 망토를 벗기자 튀어나온 검정의 곱슬머리에 그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투명한 눈물을 머금고 있던 흑안이 깜박이자 눈물 한 방울이 갈색의 피부를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황가의 아이잖아?’

 황족의 아이가 태어났다며 열렸던 축제에 놀러갔다 본 기억이 있는 그녀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마 외모 때문에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 생각해서 가져다 버린거야?’

 자신의 추론이 얼추 들어맞는다 생각했는지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을 곱게 만들며 그녀는 아이에게 물었다.

 , 부모님은 어디 가고 혼자 있니.”

 생각 외로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의 입이 조금 열렸다.

 “..다고, 기다리면 온..다고 했,-“

 다시 생각해도 서러운지 결국 말의 뒤는 다시 울음에게 먹혀 사라져버렸다.

 에휴, 이놈의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질 않아요. 변하질. 옛날에는 뭐랬지. 혈통이 중요하다 하지 않았냐.’

 얼마되지도 않은, 아마 약 몇 백 년 전의, 사상을 기억하는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이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혼자 있던 것보다는 나았는지 아이는 어느새 통통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벗겨내었던 망토의 단추를 제대로 여미더니 아이들 번쩍 들어 안았다. 갑작스레 변한 시야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는 벌벌 떠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에 묻은 의문을 읽었는지 그녀는 눈을 곱게 접으며 입을 열었다.

 나랑 가자. 울보야.”

 아이의 눈을 가리며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덮쳐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은 아이는 어느새 그녀의 품 안에서 색색거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날아오른 그녀는 허공을 가볍게 밟으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타닥거리며 모닥불이 타오르며 작은 불씨들이 방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게슴츠레 띈 눈은 갑작스런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으음, 무울..”

 평소라면 옆에 놓여져야 할 물잔이 놓이지 않자 아이는 눈에 좀 더 힘을 주어 크게 떴다. 그러자 붉은 파도가 눈 앞에서 출렁거렸다.

 깼니?”

 잠들기 직전의 일이 생각났는지 이불을 꼭 쥔 손이 좀 더 동그랗게 말렸다.

 목말라?”

 하지만 갈증이 더 컸는지 아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런 모습이 한껏 귀여웠는지 웃던 그녀는 손 끝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떠오른 유리잔 안에는 청량한 물이 차올랐다.

 우와아아.”

 난생 처음 보는 마법에 아이의 입에서는 순수한 감탄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이리 바라 봐주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은 그녀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배고프지 않아? 밥 먹을래?”

 꿀 물처럼 달디 단 물을 마셔버린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격하게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게 도와주며 손을 잡아 끌은 그녀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본 풍경은 그 어떠한 풍경이라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가 인생에서 본 그 어느 것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매혹적이었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향연과 음식의 냄새는 어린 아이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고, 곧 그것은 아이의 미소와 웃음으로 연결되었다.

 진짜 다 먹어도 돼요?”

 그럼.”

 자신이 가리키면 날아와 접시 위에 앉은 음식은 눈도 입도 행복하게 만들었으며, 어느새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하나의 작은 파티를 연상시켰다.

 잔뜩 먹어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는 아이는 어느 집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서는 주로 뭐 했어?”

 거의 아무것도 안 했어요. 형들은 수업 받고 그랬는데 저는 하고 싶은 거 하랬어요.”

 아마 태어나자마자 계승은 포기했을 것이고,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별다른 교육마저 시키지 않았겠지.  

 , 집에 가고 싶니?”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아이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

 가도 할 것도 없고, 다들 절 싫어하는 걸요.”

 그래? 그럼 나랑 여기서 살자.”

 그녀의 질문 이후에는 꽤나 오랜 공백이 그 사이를 채웠다. 제 나름대로 고민을 하는 건지 입을 앙다문 채 몇 분이고 말이 없던 아이는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내 이름은 레플이야. ?”

 이름을 답하는 것이 무엇이 어려운지 이 또한 오랜 시간 뒤에 대답이 돌아왔다.

 은파요.”

 언젠가 꼭 이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며 누군가가 지어주었지만 지워진 이름을 아이는 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생활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어리고 작았던 그는 어느 새 소년이 되어버렸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은 저녁을 먹던 도중 그녀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은파야.”

 닭다리를 뜯던 그는 무슨 일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로 답을 했다.

 우리, 마을 가서 살까?”

 커헉!”

 갑작스런 질문에 먹던 고기가 걸렸는지 급히 물을 마시고는 가슴을 몇 번 두드리던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니, 언제까지고 여기서 살 순 없잖아.”

 왜 같이 계속 못 사는데요?”

 사실 안 될 것도 없긴 하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하는 의문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을 찾긴 했다.

 같이야 계속 살면 되긴 되지. 하지만 너도 있는 겸 해서 나도 오랜만에 나가고 싶달까.”

 아이를 키우며 정말 부모의 마음이라도 갖게 된 것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그녀는 결국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순수하게만 자라서 그런 걸까 아마도 뒹굴거리며 굴러가는 저 눈동자에는 오랜 시간 숲 속에서 살고 있는 나에 대한 고민이 가득 담겨있겠지.

 조금만, 고민해 볼 게요. 저랑 살기 지루해진 건 아니죠?”

 되도 않는 질문에 헛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그녀는 이미 답이 나왔단 걸 아는 지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닫혀진 창문과 문에는 덩굴들이 자랐고 그들이 간간히 시간을 보내던 마당은 나무로 가려졌다.

 진짜 나가고 싶어요?”

 왜 나보다 너가 더 걱정이니.”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 하더라도 아직도 마녀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으며, 마녀로 몰려 죽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마녀가 맞았다. 아주 명백하게 확실한 마녀이다. 그런 그의 걱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레플은 은파의 등을 툭툭 쳤다.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까?”

 어린 게 별 걱정을 다 한다면서 픽 웃은 그녀는 손을 뻗어 곱슬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아이의 키는 어느새 그녀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머리에 손이 닿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 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다는 듯이 두 눈에 걱정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딱히 그건 아니지만-”

 그녀가 숲의 마녀로 이름을 떨쳐도 그 누구도 숲에 들어와 그녀를 잡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또한 같이 생활하며 그녀의 능력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마녀의 아이로 몰릴 수 있는 자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도, 나도, 내가 충분히 지킬 수 있어. 그럼 가자.”

 그의 걱정에 그저 마주 웃은 채 아무 걱정 말라며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내기 위해 가벼운 짐이 들어있는 배낭을 제외하고 모든 짐을 허공 어딘가에 쑤셔넣은 그녀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은 어느새 저 멀리 앞서기 시작했고 그 뒤를 허겁지겁 따르는 달음박질이 숲 속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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