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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writing/HQ

2020년의 마지막 날에

 따르릉. 울리는 시계 소리에 손을 더듬어 볼록 튀어나온 버튼을 누르자 시끄럽게 울려대던 소리가 일순간에 사라졌다. 들어낸 손을 그대로 얼굴께로 가져와 두 눈을 몇 번 비비적거려 남아있던 잠결을 쫓아낸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벽 6. 몇 년 동안 지켜온 기상시간에 재깍 일어난 그와는 다르게 하늘의 시계는 겨울이라 늦잠을 자고 싶은 건지 여전히 방 안도, 창문 밖으로 비추는 세상도 아직은 어두컴컴했다. 엉덩이를 조금씩 들썩거려 등을 침대 머리맡에 기대앉아 방 밖을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몇 분이나 기대있었을까 으쌰 하고 일어난 그는 그대로 화장실로 들어갔다. 닫힌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것은 노란색의 빛과 쏟아져 내리는 물소리, 그리고 약간의 따스한 수증기가 전부였다. 짧은 머리를 감는 데에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는지 개운한 표정으로 씻고 나온 그는 옷을 대충 걸치고는 냉장고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뭐 먹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의 손에는 어제 먹다 남은 국과 찬거리가 들려있었다. 그릇에 쌓인 랩을 벗겨내어 전자레인지에 놓고 밥과 반찬을 꺼내 한 상을 차리자 어느새 띵 하는 소리와 함께 따끈하게 데워진 국의 냄새가 솔솔 배어 나왔다.. 앉은 채로 밥 한 공기와 국 한 그릇을 해치워버린 그는 다시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를 하고는 이번에는 제대로 옷을 갖춰 입었다. 여름철과는 다르게 평소에 입던 제복 위에 이것저것을 더 걸치자 어느새 방 안에는 한 명의 사람이 아닌 털 속에 파묻힌 곰 한 명이 서있었다. 평소에도 큰 흉통 때문에 그런 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챙겨 입으니 더 그런 거 같네. 그렇지만 목에 둘러진 목도리도, 귓가를 감싸고 있는 귀마개도 하지 않는다면 날씨는 고사하고 쏟아질 잔소리가 상상이 돼 그는 그대로 문을 열고 나섰다.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닫힌 문을 뒤로하자 세상에는 하얀 눈이 한가득 내려있었다. 아직도 오르지 않은 태양 덕에 남색의 빛을 유지하고 있는 하늘과 대조되는 투명한 눈이 집 앞부터 시작해서 길가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올해는 추위가 늦게 온다더니 늦장 부리던 추위가 이제야 몰아 닥쳤는지 입에서는 쉴 새 없이 새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 밤새 변해버린 풍경을 충분히 눈에 담았다고 생각했는지 외투에 넣어둔 장갑을 꺼내 끼고서야 걸음을 옮기는 그의 머리 위로 가로등의 빛이 간간히 스쳐 지나갔다.. 푹푹 꺼지는 발을 들어 큰길로 나서자마자 자기보다 좀 더 부지런하게 아침을 맞은 사람이 있었는지 길에는 누군가가 열심히 빗질을 한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평소처럼 뛰어갈까 싶다가도 혹시 모를 장판이 있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그는 뛰려던 뒤꿈치를 내려놓고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빠드득 빠드득 우그러지는 얼음을 느끼며 길을 나서자 하나 둘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여직도 제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는 해를 대신해서 거리를 채우고 있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가게의 불빛이었다.

  “어여, 좋은 아침.”

 한파가 불어 닥친 아침에도 신문배달은 쉬지 않으시는지 오며 가며 얼굴을 익힌 분께서 인사를 건네 왔다.

 “좋은 아침입니다. 운전 조심하세요.”

 그의 답에 걱정하지 말라며 호탕하게 웃고는 다시 창을 올린 그는 금세 저 멀리 사라졌다. 또 다시 걸음을 옮기자 서너 달 지나 이제는 익숙해진 얼굴이라고 곳곳에서 아는 체하는 사람들의 인사가 들려왔다. 대부분 찬거리와 재료를 파는 분들의 인사라 더욱 익숙한 얼굴에 그도 반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사를 받아도 여유롭게 도착한 그는 대로변 옆의 파출소로 들어갔다. 형광등을 키고 자리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자 어느새 시간은 오후 12시를 지나 순식간에 저녁을 향해 달려갔다. 갑작스레 쏟아진 일감을 처리하고 들어온 민원을 처리하러 동네 순찰을 나갔다가 어르신들 말벗 좀 해드리고 돌아오자 어느새 해가 떠버렸다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되었다.

 “나보다 늦게 출근해서 먼저 퇴근하네.”

 가볍게 웃으며 의자에 걸쳐있는 옷가지를 하나 둘 주섬주섬 입자 어느새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평소처럼 주고받은 인사에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는지 잠시간의 침묵이 실내에 떠돌았다.

 “내일 11일인데, 공휴일에 출근하시려고요?”

 “설마요, 오늘 말일이지 맞다. 연말 잘 보내세요.”

 유리문을 밀고 나오자 아침과 똑같이 어둑해진 풍경에 하얀 입김이 그를 맞았다. 또다시 외투에서 장갑을 꺼내 끼려던 찰나 호주머니 안쪽에서 짧은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아직은 따뜻한 손으로 후다닥 핸드폰을 켜 확인해보니 이제 막 다들 퇴근했는지 메시지가 와있다는 알람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이치 생일 축하해.

 짧게 보낸 메시지서부터 여럿이서 머리를 맞대고 보냈는지 혼자서는 못 쓸 만한 장문의 축하 메시지까지 여러 통의 문자들이 쌓여있었다. 그 짧다면 짧은 문장에서도 어쩜 그리도 성격이 잘 보이는 지 꼭 귓가에 대고 소리치는 시끄러운 문자를 보는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차올랐다. 그렇다고 길가에 계속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그는 문자 하나하나에 답을 보내기 시작했다. , 고마워. 별 일은 없지. 올해에는 혼자 보내지 않을까 싶은데. 아냐 말만으로도 고마워. 감기 조심해라. 언제 한 번 갈게. 받은 만큼의 마음에 답하고자 열심히 액정을 두드리는 그의 손길이 바빴다. 답장을 보낸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확인을 하고 그가 핸드폰을 보고 있을 거란 확신이 있는지 한차례 다시 울리는 알람을 확인하자 케이크와 커피, 혹은 햄버거 세트 교환권 등등이 하나 둘 차곡차곡 쌓였다.

안 보내도 된다니까? 급하게 연락을 보내자 얼굴도 못 보는데 어때 라는 태평한 답들만이 돌아왔다. 매년 챙겨주는 씀씀이에 고맙다며 답을 한 그는 일단 케이크를 교환하기 위해 근처의 가게들을 떠올렸다. 평소 순찰 돌던 습관을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픽하고 웃은 그는 집과 직장 근처의 빵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오세요~”

 벌써 연말을 축하하려는지 대부분의 케이크는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혹시 이거 이걸로도 교환되나요?”?”

 “가능합니다.”

 “그럼 이걸로 하나 주세요.”

 가장 무난한 생크림 케이크를 선택한 그는 필요한 건 더 없냐는 직원의 물음에 초 하나만을 부탁한 채 가게를 나섰다.

 손에 든 케이크를 놓칠까 조심조심 집으로 들어온 그는 식탁 위에 케이크를 두고는 아침에 한 행동을 그대로 반복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증기를 뒤로하고 상자에서 꺼낸 케이크를 식탁에 조심히 올려놓은 그는 초 하나를 꽂은 채 작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노래가 끝나고, 그는 케이크 한 조각을 접시에 담아 먹기 시작했다. 그 사이 그렇게 고마우면 노래 부르는 영상이나 찍어 달라 해 보내준 동영상은 어느새 한 바퀴를 돌았는지 벌써 핸드폰 상단은 온갖 웃음소리와 함께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주장 왜 그렇게 쓸쓸해 보여요. , 누가 가서 다이치 옆에 좀 있어줘라. 다이치 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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