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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s writing/1차 창작

곰 한 마리가 한 집에 있어

 말랑? 아니 그것보단 조금 더 단단한. 그렇다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손등을 누르는 기분에 감겨 있던 눈을 찌푸렸다. 하늘하늘하게 달린 커튼 너머로 옅게 비치는 하얀색 햇살이 가슴께에 내려앉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쓰윽 내밀며 이거 사자. 이거 마음에 들어.’ 하면서 보여준, 뭐랬더라. 당신의 방안에 물결을 만들어보세요?, 어찌 되었든 커튼의 기능은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이쁘기만 한 그런 거였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는 쳐다보는 눈길에 어쩔 수 없이 결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결제한 지 2일 만에 배송이 완료되어, 정작 자기는 이런 거 달 줄 모른다면 옆에서 커튼 다는 걸 구경만 한 그는 커튼이 달리자 너무 좋다며 온종일 커튼 너머의 햇빛을 만끽하며 누워있었었다.

그 뒤로 밤에도 밝아진 방 덕에 추가로 산 안대를 벗자 손등 위에서 움찔거리는 그의 손이 보였다. 매번 잠결에도 상대의 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그의 손을 보는건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살풋 웃음이 지어지게 했다. 꽤 깊은 잠에 빠져있는지 오늘따라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하는 손을 바라보다 이불 속에서 손을 빼 조심스레 겹쳤다. 그제야 움직임이 멈춘 그는 다시 색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잠은 저만치 멀리 달아나버렸고, 그렇다고 일어나기에는 옆에 누운 사람이 깰까 봐 신경이 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창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바람만 느끼며 누워있은지 몇 분째, 아무래도 안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몸을 아주 조금, 아아주 조금씩 비틀어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잡고 있는 손 덕분에 손목이 비틀리지 않게 주의하면서도 침대가 출렁거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옆으로 돌아누워 오른팔을 베개 밑으로 쑥 넣자 동그란 머리통이 품속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린넨 재질의 이불이 주던 시원한 촉감은 금방 사람의 체온에 밀려 사라졌다. 오른팔에 힘을 주자 더욱더 강하게 느껴지는 열기에 그제야 만족한 나는 씨익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 어떡하지.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행위들을 하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으며 정수리 쪽으로 코를 가져다 대었다. 달달함과 고소함이 섞인 체취가 코끝에 머물렀다. 별거 아닌 것에 뿌듯해지는 이 상황도, 또 그게 만족스러워서 웃고 있는 자신이 웃겨 아침부터 만면엔 미소가 가득했다. 한 번 맡기 시작한 냄새는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켜 조금 남아있던 퍼스널 스페이스마저 무너트렸다. 뒤통수에만 대놓고 있던 손은 어느샌가 목뒤로 내려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분거렸다. 여태 끼워져있던 손깍지는 어느새 풀려있었다. 자유로워진 왼손은 헐렁한 잠옷 밑으로 들어가 오동통한 옆구리 위에 안착했다. 적당한 살집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상체를 조물락조물락거리자 간지러운지 약한 신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렇지만 이미 시간은 11시를 넘어가는걸. 이제 점심이야. 일어나야지. 상대의 동의와 의도는 구하지 않은 채 맞지 하며 합리화를 하는 손길은 이제 거침이 없었다. 이런 여유도 주말에만 누릴 수 있는데, 어떻게 잠만 자면서 보내겠어. 아까 전만 해도 상대를 배려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목에 코까지 박는 모습은 남이 보면 꽤 본격적이라고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과 살을 맞닿은 채 뒹굴거리자 꿈쩍 않던 몸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뭐하냐.”

 에이 얼마 안 했는데. 단잠을 방해받은 맹수의 목소리랄까, 낮고 잠겨버린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좋은 아침?”

 자유분방하던 손은 이미 잡혀버렸고, 새까만 눈동자는 어느샌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황천, 아니 죽고, 뭐하냐.”

 막 깨서 그런가 언어 필터가 고장이 난 그의 발언에 눈웃음으로 답하자 한숨을 한 번 내쉰 그는 나를 끌어안았다. 더 잘 테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담긴 행위에 입이 댓 발 튀어나왔지만 딱히 황천길을 탐방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가만히 꼬리를 내렸다. 서늘한 봄바람에 사람의 체온 섞이자 말똥했던 정신도 노곤노곤해지는건 금방이었다. 몇 년째 맡아온 익숙한 향기에 둘러싸여 다시 꿈나라로 빠지려 하는 영혼을 붙잡는 것도 잠시, 등을 몇 번 토닥이는 손길에 눈앞은 캄캄해졌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로 수마에 빠지고 난 뒤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도 느껴지는 무언가에 설핏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강해진 햇살에 눈이 부신 것도 잠시, 꿈벅이며 눈을 뜨자 커다란 무언가가 배 위에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아까는 손이더니 이번에는 몸뚱아리 전체가 올라와 있었다.

 “뭐해?”

 아까 제가 뱉은 물음을 그대로 돌려주자 커다란 두 눈이 눈웃음 아래로 숨어 보이지 않았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눈웃음 하나는 기깔나게 이쁘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을 준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박은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행동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손을 들어 그대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렇게 무게감을 한껏 만끽하고 있던 나는 아까와는 다른 달콤한 향이 나는 걸 깨달았다. 인공 감미료가 들어간 그런 달콤한 향과 함께 맡아지는 매캐한 검은 향을 눈치채자마자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떠졌다.

 “, 나와봐.”

 살짝 굳어버린 내 목소리를 느꼈는지 나를 안고 있던 팔이 조금 더 옥죄어왔다.

 “나와.”

 꽤 중요한 부위에 무릎을 대고 지그시 누르자 그는 향후 자신에게 닥칠 위협을 느꼈는지 몸을 한 바퀴 데굴 굴러 옆으로 내려갔다. 몸을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자 눈에 보인 것은 흩뿌려진 빵부스러기와 어수선한 개수대였다. 물기를 반쯤 머금은 행주를 들어 올리자 달콤한 향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옆에 있는 프라이팬을 뒤집어 탁탁 털자 검정 부스러기들이 개수대 안으로 떨어졌다.

 “이 곰 새끼가... 처먹을 줄만 알고.”

 배는 고픈데 자기가 재워놓고 깨울 염치는 없어 뭔가 해 먹어보겠다고 한 거 같은데, 그는 주위에서도 알아주는 요리 못하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토스트 하나 못 구워 먹어서 이 사달을 내? 왠지 오늘따라 안 하던 짓을 한다 했다. 그리고 번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자 사다 놓은 카야잼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병도 놓쳐서 깼나 보다. 주말에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으로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자 다른 곳과 다르게 조금 윤기가 남아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방문을 벌컥 열자 그새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 그는 이불 위로 두 눈만 내놓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씨익 웃으면서 제 옆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터벅터벅 다가가 풀썩 앉자 꾸물꾸물 기어와 허리에 두 팔 가득 두르는 것이 무슨 말을 할지 참으로 잘 아는 모양새였다.

 “,”

 “알지. 내가 잘못했지. 그래서 치웠어. 미안해.”

 나는 하고 싶은 말의 99.9%는 하지도 못했는데 우수수 내뱉는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게 치운거냐? 바닥에 끈적이는 건 그대로 있고, 행주는 제대로 빨아져 있지도 않으며, 프라이팬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았는데 아까부터 배에 대고 비비적거리는 머리통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보는 모습에 목 끝까지 차오른 화를 한숨 한 번으로 몸 밖으로 빼버린 나는 뒤통수를 꽉 눌러주는 걸로 말을 마무리했다.

 “손은 안 다쳤어? 발은? 유리는 잘 치웠더라.”

 중요한 일 빼고는 다 대충하는 성격이라 유리 조각만 꼼꼼하게 치웠을 그라 손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

 “배 안 고파? 뭐 먹으러 갈래?”

 내 질문에 그제야 몸을 발라당 뒤집은 그는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눕고는 메뉴를 읊기 시작했다. 대충 근처에 있는 식당의 메뉴를 고른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밥은 밥이고, 치울 건 치워야지?”

 어딜 뻔뻔하게 침대에 누워있어. 귓바퀴를 잡은 채 걸음을 옮기자 아악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차마 강하게 뿌리치지도 못하고 내 손목만을 부여잡은 채 방 밖으로 끌려온 그는 귀가 자유로워지자 뭘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행주 제대로 빨고, 부스러기 치우고, 프라이팬 닦아.”

 할 말만 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씻을 준비를 하는 그 순간에도 쿵 하고 어디엔가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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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실의 여행

 녹음이 우거진 나무 그늘 사이로 새소리가 기분 좋게 귓가를 간질이고 있었다. 나뭇잎에 반사된 햇살은 장난스레 그녀의 눈가를 간질였다. 그녀 또한 그런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는지 입가에 살풋 미소를 띄운 채로 걸었다. 발바닥에 스치는 여린 풀잎들은 아직 새벽의 이슬을 다 털어내지 못했는지 살결이 스쳐 지나갈 때 마다 제 흔적을 묻혔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오랜만에 나온 산책이라 그동안 닫아두었던 귀를 활짝 열자 평소라면 들릴 리 없는 소리가 어느한 구석에서 들렸다. 코를 훌쩍이는 소리, 그러다가도 울면 안 된다 생각하는지 막아보지만 새어 나오는 물기어린 소리. 자신의 숲에서 들릴리 없는 소리에 그녀의 발 끝은 어느새 소리가 시작되는 곳을 찾아 가고 있었다.

평소 다니던 길이 아닌 수풀이 무성하고 나무줄기가 얽기설기 얽혀있는 길을 손 끝으로 치우며 걸어가자 저 멀리 갈색의 덩어리가 보였다.

 ,흐엉..크흡!”

 더 가까이 다가가자 코를 먹는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들려왔다. 쉬이 진정되지 않는 지 아마도 어깨로 추정되는 곳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아이?’

 자신의 숲은 이미 주변의 영지 내에서는 마녀의 숲이라 알음알음 소문이 퍼졌을 텐데 이런 어린 아이가 숲 한 구석에서 이러고 있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이의 어깨를 툭 쳤다.

 얘야, 여기서 뭐하니?”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울고 있던 아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건들자 화들짝 고개를 돌렸고, 그 누가 누구인지 확인하자 마자 울음을 그쳤다. 그리고 울음이 그치고 3초 뒤.

 딸꾹, 딸꾹. , 하끅.”

 발목까지 내려오며 바람과 상관없이 흔들리는 새빨간 머리카락에 보랏빛과 남청색이 오묘하게 섞여 있는 옷감으로 만들어진 옷.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며 웃고 있는 녹색의 눈동자. 잠에 들지 못하는 밤에 유모가 간간히 들려주던 숲 속의 마녀의 외모와 흡사한 모습에 아이는 우는 것도 잊은 채 딸꾹질만을 반복했다.

 어머, . 누가 잡아먹기라도 한다니?”

 자신을 바라보는 커다란 두 눈동자에 제 눈 만한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히는 걸 본 그녀는 깔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손에 흠칫 몸을 떨었지만 아이는 차마 그녀의 손길을 피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가온 두 손은 눈을 꼬옥 감은 채 사시나무 떨 듯 있던 아이의 머리 씌워져 있던 망토를 벗겨 내렸다. 망토를 벗기자 튀어나온 검정의 곱슬머리에 그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났다. 투명한 눈물을 머금고 있던 흑안이 깜박이자 눈물 한 방울이 갈색의 피부를 타고 또르르 흘러내렸다.

 황가의 아이잖아?’

 황족의 아이가 태어났다며 열렸던 축제에 놀러갔다 본 기억이 있는 그녀의 머리는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설마 외모 때문에 황위를 계승할 수 없다 생각해서 가져다 버린거야?’

 자신의 추론이 얼추 들어맞는다 생각했는지 절로 찌푸려지는 인상을 곱게 만들며 그녀는 아이에게 물었다.

 , 부모님은 어디 가고 혼자 있니.”

 생각 외로 다정한 목소리에 아이의 입이 조금 열렸다.

 “..다고, 기다리면 온..다고 했,-“

 다시 생각해도 서러운지 결국 말의 뒤는 다시 울음에게 먹혀 사라져버렸다.

 에휴, 이놈의 인간들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질 않아요. 변하질. 옛날에는 뭐랬지. 혈통이 중요하다 하지 않았냐.’

 얼마되지도 않은, 아마 약 몇 백 년 전의, 사상을 기억하는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이 숲 너머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혼자 있던 것보다는 나았는지 아이는 어느새 통통한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는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잠시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녀는 벗겨내었던 망토의 단추를 제대로 여미더니 아이들 번쩍 들어 안았다. 갑작스레 변한 시야에 눈을 동그랗게 뜬 아이는 벌벌 떠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에 묻은 의문을 읽었는지 그녀는 눈을 곱게 접으며 입을 열었다.

 나랑 가자. 울보야.”

 아이의 눈을 가리며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를 중얼거렸고, 덮쳐오는 수마에 저항하지 않은 아이는 어느새 그녀의 품 안에서 색색거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날아오른 그녀는 허공을 가볍게 밟으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타닥거리며 모닥불이 타오르며 작은 불씨들이 방안을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다. 게슴츠레 띈 눈은 갑작스런 빛에 적응하지 못하고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으음, 무울..”

 평소라면 옆에 놓여져야 할 물잔이 놓이지 않자 아이는 눈에 좀 더 힘을 주어 크게 떴다. 그러자 붉은 파도가 눈 앞에서 출렁거렸다.

 깼니?”

 잠들기 직전의 일이 생각났는지 이불을 꼭 쥔 손이 좀 더 동그랗게 말렸다.

 목말라?”

 하지만 갈증이 더 컸는지 아이는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런 모습이 한껏 귀여웠는지 웃던 그녀는 손 끝을 살짝 흔들었다. 그러자 떠오른 유리잔 안에는 청량한 물이 차올랐다.

 우와아아.”

 난생 처음 보는 마법에 아이의 입에서는 순수한 감탄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자신에게 손가락질하지 않고 이리 바라 봐주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얼마나 오랜만이던가. 그런 생각이 문득 들은 그녀는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배고프지 않아? 밥 먹을래?”

 꿀 물처럼 달디 단 물을 마셔버린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격하게 동의의 뜻을 나타냈다. 아이가 침대에서 일어나게 도와주며 손을 잡아 끌은 그녀는 밖으로 향하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본 풍경은 그 어떠한 풍경이라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가 인생에서 본 그 어느 것보다도 화려하고 아름다웠으며 매혹적이었다.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빛의 향연과 음식의 냄새는 어린 아이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고, 곧 그것은 아이의 미소와 웃음으로 연결되었다.

 진짜 다 먹어도 돼요?”

 그럼.”

 자신이 가리키면 날아와 접시 위에 앉은 음식은 눈도 입도 행복하게 만들었으며, 어느새 들려오는 음악 소리는 하나의 작은 파티를 연상시켰다.

 잔뜩 먹어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누워있는 아이는 어느 집의 아이들과 다를 바 없었다.

 집에서는 주로 뭐 했어?”

 거의 아무것도 안 했어요. 형들은 수업 받고 그랬는데 저는 하고 싶은 거 하랬어요.”

 아마 태어나자마자 계승은 포기했을 것이고, 위협이 되지 못하도록 별다른 교육마저 시키지 않았겠지.  

 , 집에 가고 싶니?”

 갑작스런 그녀의 질문에 아이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

 가도 할 것도 없고, 다들 절 싫어하는 걸요.”

 그래? 그럼 나랑 여기서 살자.”

 그녀의 질문 이후에는 꽤나 오랜 공백이 그 사이를 채웠다. 제 나름대로 고민을 하는 건지 입을 앙다문 채 몇 분이고 말이 없던 아이는 큰 결심을 한 것처럼 알았다고 대답을 했다.

 내 이름은 레플이야. ?”

 이름을 답하는 것이 무엇이 어려운지 이 또한 오랜 시간 뒤에 대답이 돌아왔다.

 은파요.”

 언젠가 꼭 이 이름으로 불러주고 싶다며 누군가가 지어주었지만 지워진 이름을 아이는 답했다.

 그렇게 시작된 생활은 몇 년 동안 지속되었다. 어리고 작았던 그는 어느 새 소년이 되어버렸고 그런 그를 바라보던 그녀는 한 가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와 같은 저녁을 먹던 도중 그녀는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은파야.”

 닭다리를 뜯던 그는 무슨 일이냐며 눈을 동그랗게 뜨는 걸로 답을 했다.

 우리, 마을 가서 살까?”

 커헉!”

 갑작스런 질문에 먹던 고기가 걸렸는지 급히 물을 마시고는 가슴을 몇 번 두드리던 그는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라보았다.

 아니, 언제까지고 여기서 살 순 없잖아.”

 왜 같이 계속 못 사는데요?”

 사실 안 될 것도 없긴 하다. 하지만 과연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이에게 좋을까 하는 의문이 슬금슬금 올라오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을 찾긴 했다.

 같이야 계속 살면 되긴 되지. 하지만 너도 있는 겸 해서 나도 오랜만에 나가고 싶달까.”

 아이를 키우며 정말 부모의 마음이라도 갖게 된 것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그녀는 결국 나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순수하게만 자라서 그런 걸까 아마도 뒹굴거리며 굴러가는 저 눈동자에는 오랜 시간 숲 속에서 살고 있는 나에 대한 고민이 가득 담겨있겠지.

 조금만, 고민해 볼 게요. 저랑 살기 지루해진 건 아니죠?”

 되도 않는 질문에 헛웃음을 터트린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아니라고 아이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머리를 긁적이며 들어가는 그의 뒷모습에 그녀는 이미 답이 나왔단 걸 아는 지 집을 한 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감은 정확히 맞아 떨어졌다. 닫혀진 창문과 문에는 덩굴들이 자랐고 그들이 간간히 시간을 보내던 마당은 나무로 가려졌다.

 진짜 나가고 싶어요?”

 왜 나보다 너가 더 걱정이니.”

 아무리 시간이 흘렀다 하더라도 아직도 마녀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으며, 마녀로 몰려 죽는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이었다. 거기에 그녀는 마녀가 맞았다. 아주 명백하게 확실한 마녀이다. 그런 그의 걱정이 표정에 그대로 드러났는지 걱정하지 말라며 레플은 은파의 등을 툭툭 쳤다.

 내가 내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할까?”

 어린 게 별 걱정을 다 한다면서 픽 웃은 그녀는 손을 뻗어 곱슬거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만큼 아이의 키는 어느새 그녀의 머리를 훌쩍 뛰어넘었지만 머리에 손이 닿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춘 그는 그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 다는 듯이 두 눈에 걱정을 한가득 담고 있었다.

 딱히 그건 아니지만-”

 그녀가 숲의 마녀로 이름을 떨쳐도 그 누구도 숲에 들어와 그녀를 잡지 못했다. 그만큼 그녀는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 또한 같이 생활하며 그녀의 능력을 누구보다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히려 마녀의 아이로 몰릴 수 있는 자신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너도, 나도, 내가 충분히 지킬 수 있어. 그럼 가자.”

 그의 걱정에 그저 마주 웃은 채 아무 걱정 말라며 여행을 떠나는 기분을 내기 위해 가벼운 짐이 들어있는 배낭을 제외하고 모든 짐을 허공 어딘가에 쑤셔넣은 그녀는 가볍게 걸음을 옮겼다. 바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은 어느새 저 멀리 앞서기 시작했고 그 뒤를 허겁지겁 따르는 달음박질이 숲 속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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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그들 이야기-밤손님

 가로등의 백열과 휴대폰의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한데 섞여 있는 방의 침대 위에 누군가가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무언가라도 있는지 우측 상단에 있는 전자시계를 이따금 흘긋거리며 관심도 없는 화면 속 세상을 몇 번 보고 있던 그는 화면이 검게 변하며 누군가의 이름이 화면에 뜨자 빠르게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고요한 이곳과는 다르게 여전히 바쁜 사람들이 사는 세계인 듯 시끄러운 소리가 전해 들어왔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 혹은 웃음소리, 그리고 아직 밖임을 증명하는 듯한 바람 소리까지 뭐 하나 잊지 않고 그 좁디좁은 곳으로 빨려 들어와 그의 귓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바쁘게 걸어가는 걸음 속에서도 휴대폰을 어깨에 끼고서 걷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어느샌가 자그마한 미소가 입가에 걸쳤다.

 "응, 자기야."

 남아있던 미소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은 채 목소리를 타고 전달이 되었는지 상기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소리를 냈다는 것을 본인도 알아차렸는지 그는 머쓱함에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하고 있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연락을 주고받으며 무엇을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알아냈건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그는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그런 제 애인의 질문이 지겹지도 않은지 낮게 큭큭거리며 웃던 목소리는 지금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털어놓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어떤지,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묻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해주는 그의 목소리에 누워있던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비록 옆에 있지는 않더라도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작금의 상황이 꽤 만족스러운지 그의 입에서는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작다고 생각했던 그 웃음소리를 용케 들었는지 전화 저편에서 뭐가 그리 좋냐는 물음이 건너왔다. 자기는 지금 혼자 길거리를 걷느라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불퉁한 말과 함께. 생긴 건 자기보다 훨씬 무뚝뚝하게 생겨서는 이렇게 드문드문 던지는 말들은 어찌나 귀여운지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나도 딱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냐고? 침대가 너무 넓다는 생각? 혼자 쓰니까 너어무 넓은 거 있지." 

 둘이 누울 때는 꽉 찬 것만 같았는데 혼자 누우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도 왜 이리 넓은지 두 팔과 다리를 쭉쭉 펴도 남는 공간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 한편이 같이 비워진 느낌에 괜스레 베개만 껴안고 있던 시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슬슬 자기 냄새도 안 나."

 옅으면서도 시원한 향이 나던 베갯잇에서는 더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게 되었다. 항상 머리를 감고 나서 대충 털털 말리고는 풀썩 눕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말려주곤 했었는데.

 "보고 싶다. 자기도 나 보고 싶은 거 알지."

 짧은 침묵 후에 결국 웃음 아래에 미뤄뒀던 속마음이 새어 나왔다. 상대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말이 부담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내 숨겨왔던 말을 내뱉고 나자 그동안 눌러왔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감정이 차올랐다. 보고 싶다. 자기가 너무 보고 싶어. 날숨과 함께 가볍게 흘러나간 속삭임이 방 안을 잠시 맴돌다 사라졌다. 그 말이 사라지는 잠깐의 공백이 있고 난 뒤 갈까 하는 짧은 대답 겸 질문이 돌아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야, 올 수 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 쳐져 있던 그는 어디로 갔는지 벌떡 일어난 그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양말과 의자에 걸려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 가득 빨랫감을 집어 들어 세탁기에 쑤셔 박은 그는 시선을 들어 방 안을 훑었다. 이미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지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도착한다는 말이 들렸다. 먹고 치우지 않은 비닐봉지와 접시들을 정리한 그는 급한 불은 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애인은 자주 가는 집 근처 빵집에서 그가 즐겨 먹는 빵을 사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고 있었다.

 "진짜? 그거 사 올 수 있어? 거기 줄 서서 사야 될 텐데."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하지도 않고, 속에 들어간 잼이 마지막은 혀를 달달하게 감싸는 빵을 상상하자 어느새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약간은 늦은 시간이지만 직장인들이 퇴근하며 자주 들르는 탓에 이 시간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알고 있는 그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고민은 너털웃음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눈 녹듯 사라졌다.

 "응. 사와 사와. 와서 마실 거랑 같이 먹으면서 붙어있자."

 냉장고에 마실 게 있던가. 차를 미리 준비해둬야 할까. 늦저녁의 깜짝 손님으로 인해 분주해진 생각들을 정리하며 그는 조금 후의 미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의 애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훤히 아는지 그의 웃음이 들렸다. 그렇게 좋아. 별것도 아닌 일에 그리도 행복해하는 그가 귀여운지 그가 웃음기 띈 질문을 던졌다. 

 "응.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다. 이번엔 뭐 볼래?"

 벌써 그의 머릿속에서는 영화가 나오는 노트북을 침대에 앉아 보는 둘의 모습이 떠다니고 있었다. 각각 빵과 컵을 손에 든 채 우물거리는 둘의 모습이, 그러다 허리에 드문드문 다가오는 손에 의해 그의 옆으로 좀 더 당겨지는 그의 모습이.

 "알았어. 찾아둘게. 얼른 와."

 약간의 재촉을 끝으로 통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좀 더 방을 정리하고 나자, 현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빵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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