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writing/1차 창작

곰 한 마리가 한 집에 있어

 말랑? 아니 그것보단 조금 더 단단한. 그렇다고 너무 단단하지도 않은 무언가가 손등을 누르는 기분에 감겨 있던 눈을 찌푸렸다. 하늘하늘하게 달린 커튼 너머로 옅게 비치는 하얀색 햇살이 가슴께에 내려앉고 있었다. 인터넷을 뒤적거리다가 갑자기 핸드폰을 쓰윽 내밀며 이거 사자. 이거 마음에 들어.’ 하면서 보여준, 뭐랬더라. 당신의 방안에 물결을 만들어보세요?, 어찌 되었든 커튼의 기능은 하나도 하지 못하면서 이쁘기만 한 그런 거였지만 두 눈을 동그랗게 만들고는 쳐다보는 눈길에 어쩔 수 없이 결제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 결제한 지 2일 만에 배송이 완료되어, 정작 자기는 이런 거 달 줄 모른다면 옆에서 커튼 다는 걸 구경만 한 그는 커튼이 달리자 너무 좋다며 온종일 커튼 너머의 햇빛을 만끽하며 누워있었었다.

그 뒤로 밤에도 밝아진 방 덕에 추가로 산 안대를 벗자 손등 위에서 움찔거리는 그의 손이 보였다. 매번 잠결에도 상대의 손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그의 손을 보는건 볼 때마다 왠지 모르게 살풋 웃음이 지어지게 했다. 꽤 깊은 잠에 빠져있는지 오늘따라 목적지에 제대로 도착하지 못하는 손을 바라보다 이불 속에서 손을 빼 조심스레 겹쳤다. 그제야 움직임이 멈춘 그는 다시 색색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미 잠은 저만치 멀리 달아나버렸고, 그렇다고 일어나기에는 옆에 누운 사람이 깰까 봐 신경이 쓰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창문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바람만 느끼며 누워있은지 몇 분째, 아무래도 안 일어날 것 같은 생각에 몸을 아주 조금, 아아주 조금씩 비틀어보기 시작했다.

여전히 잡고 있는 손 덕분에 손목이 비틀리지 않게 주의하면서도 침대가 출렁거리지 않도록 신경을 쓰며 움직이는 건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옆으로 돌아누워 오른팔을 베개 밑으로 쑥 넣자 동그란 머리통이 품속으로 그대로 들어왔다. 린넨 재질의 이불이 주던 시원한 촉감은 금방 사람의 체온에 밀려 사라졌다. 오른팔에 힘을 주자 더욱더 강하게 느껴지는 열기에 그제야 만족한 나는 씨익 웃으며 자세를 잡았다. , 어떡하지.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다양한 행위들을 하고 싶은 욕구를 눌러 참으며 정수리 쪽으로 코를 가져다 대었다. 달달함과 고소함이 섞인 체취가 코끝에 머물렀다. 별거 아닌 것에 뿌듯해지는 이 상황도, 또 그게 만족스러워서 웃고 있는 자신이 웃겨 아침부터 만면엔 미소가 가득했다. 한 번 맡기 시작한 냄새는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켜 조금 남아있던 퍼스널 스페이스마저 무너트렸다. 뒤통수에만 대놓고 있던 손은 어느샌가 목뒤로 내려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분거렸다. 여태 끼워져있던 손깍지는 어느새 풀려있었다. 자유로워진 왼손은 헐렁한 잠옷 밑으로 들어가 오동통한 옆구리 위에 안착했다. 적당한 살집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상체를 조물락조물락거리자 간지러운지 약한 신음이 그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그렇지만 이미 시간은 11시를 넘어가는걸. 이제 점심이야. 일어나야지. 상대의 동의와 의도는 구하지 않은 채 맞지 하며 합리화를 하는 손길은 이제 거침이 없었다. 이런 여유도 주말에만 누릴 수 있는데, 어떻게 잠만 자면서 보내겠어. 아까 전만 해도 상대를 배려하던 모습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목에 코까지 박는 모습은 남이 보면 꽤 본격적이라고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살과 살을 맞닿은 채 뒹굴거리자 꿈쩍 않던 몸이 조금씩 반응하기 시작했다.

 “뭐하냐.”

 에이 얼마 안 했는데. 단잠을 방해받은 맹수의 목소리랄까, 낮고 잠겨버린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좋은 아침?”

 자유분방하던 손은 이미 잡혀버렸고, 새까만 눈동자는 어느샌가 나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황천, 아니 죽고, 뭐하냐.”

 막 깨서 그런가 언어 필터가 고장이 난 그의 발언에 눈웃음으로 답하자 한숨을 한 번 내쉰 그는 나를 끌어안았다. 더 잘 테니까 방해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뜻이 담긴 행위에 입이 댓 발 튀어나왔지만 딱히 황천길을 탐방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가만히 꼬리를 내렸다. 서늘한 봄바람에 사람의 체온 섞이자 말똥했던 정신도 노곤노곤해지는건 금방이었다. 몇 년째 맡아온 익숙한 향기에 둘러싸여 다시 꿈나라로 빠지려 하는 영혼을 붙잡는 것도 잠시, 등을 몇 번 토닥이는 손길에 눈앞은 캄캄해졌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가 아닌 채로 수마에 빠지고 난 뒤 얼마나 지났을까, 이번에도 느껴지는 무언가에 설핏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강해진 햇살에 눈이 부신 것도 잠시, 꿈벅이며 눈을 뜨자 커다란 무언가가 배 위에 올라와 있는 게 보였다. 아까는 손이더니 이번에는 몸뚱아리 전체가 올라와 있었다.

 “뭐해?”

 아까 제가 뱉은 물음을 그대로 돌려주자 커다란 두 눈이 눈웃음 아래로 숨어 보이지 않았다. 누구한테 배웠는지 눈웃음 하나는 기깔나게 이쁘네.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답변을 준 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박은 채 얼굴을 들지 않았다. 평소에는 잘 하지 않는 행동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손을 들어 그대로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그렇게 무게감을 한껏 만끽하고 있던 나는 아까와는 다른 달콤한 향이 나는 걸 깨달았다. 인공 감미료가 들어간 그런 달콤한 향과 함께 맡아지는 매캐한 검은 향을 눈치채자마자 반쯤 감겼던 눈이 번쩍 떠졌다.

 “, 나와봐.”

 살짝 굳어버린 내 목소리를 느꼈는지 나를 안고 있던 팔이 조금 더 옥죄어왔다.

 “나와.”

 꽤 중요한 부위에 무릎을 대고 지그시 누르자 그는 향후 자신에게 닥칠 위협을 느꼈는지 몸을 한 바퀴 데굴 굴러 옆으로 내려갔다. 몸을 벌떡 일어나 방문을 열자 눈에 보인 것은 흩뿌려진 빵부스러기와 어수선한 개수대였다. 물기를 반쯤 머금은 행주를 들어 올리자 달콤한 향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옆에 있는 프라이팬을 뒤집어 탁탁 털자 검정 부스러기들이 개수대 안으로 떨어졌다.

 “이 곰 새끼가... 처먹을 줄만 알고.”

 배는 고픈데 자기가 재워놓고 깨울 염치는 없어 뭔가 해 먹어보겠다고 한 거 같은데, 그는 주위에서도 알아주는 요리 못하는 사람이었다. 간단한 토스트 하나 못 구워 먹어서 이 사달을 내? 왠지 오늘따라 안 하던 짓을 한다 했다. 그리고 번뜩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냉장고 문을 열자 사다 놓은 카야잼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병도 놓쳐서 깼나 보다. 주말에 정말 가지가지 한다는 생각으로 바닥을 유심히 살펴보자 다른 곳과 다르게 조금 윤기가 남아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방문을 벌컥 열자 그새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간 그는 이불 위로 두 눈만 내놓은 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빤히 쳐다보자 그제야 씨익 웃으면서 제 옆을 손바닥으로 툭툭 쳤다. 터벅터벅 다가가 풀썩 앉자 꾸물꾸물 기어와 허리에 두 팔 가득 두르는 것이 무슨 말을 할지 참으로 잘 아는 모양새였다.

 “,”

 “알지. 내가 잘못했지. 그래서 치웠어. 미안해.”

 나는 하고 싶은 말의 99.9%는 하지도 못했는데 우수수 내뱉는 말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게 치운거냐? 바닥에 끈적이는 건 그대로 있고, 행주는 제대로 빨아져 있지도 않으며, 프라이팬은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둔 게?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았는데 아까부터 배에 대고 비비적거리는 머리통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어쩌다 한 번 보는 모습에 목 끝까지 차오른 화를 한숨 한 번으로 몸 밖으로 빼버린 나는 뒤통수를 꽉 눌러주는 걸로 말을 마무리했다.

 “손은 안 다쳤어? 발은? 유리는 잘 치웠더라.”

 중요한 일 빼고는 다 대충하는 성격이라 유리 조각만 꼼꼼하게 치웠을 그라 손바닥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물었다.

 “.”

 “배 안 고파? 뭐 먹으러 갈래?”

 내 질문에 그제야 몸을 발라당 뒤집은 그는 허벅지에 머리를 대고 눕고는 메뉴를 읊기 시작했다. 대충 근처에 있는 식당의 메뉴를 고른 나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의 귀를 잡아당겼다.

 “밥은 밥이고, 치울 건 치워야지?”

 어딜 뻔뻔하게 침대에 누워있어. 귓바퀴를 잡은 채 걸음을 옮기자 아악 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차마 강하게 뿌리치지도 못하고 내 손목만을 부여잡은 채 방 밖으로 끌려온 그는 귀가 자유로워지자 뭘 해야 할지 몰라 멀뚱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행주 제대로 빨고, 부스러기 치우고, 프라이팬 닦아.”

 할 말만 한 채 화장실로 들어가 씻을 준비를 하는 그 순간에도 쿵 하고 어디엔가 머리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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