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writing/1차 창작

이름 없는 그들 이야기-밤손님

 가로등의 백열과 휴대폰의 화면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한데 섞여 있는 방의 침대 위에 누군가가 누워 뒹굴거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무언가라도 있는지 우측 상단에 있는 전자시계를 이따금 흘긋거리며 관심도 없는 화면 속 세상을 몇 번 보고 있던 그는 화면이 검게 변하며 누군가의 이름이 화면에 뜨자 빠르게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핸드폰을 귀에 가져다 대자 고요한 이곳과는 다르게 여전히 바쁜 사람들이 사는 세계인 듯 시끄러운 소리가 전해 들어왔다.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소리, 지나가는 사람들의 말 혹은 웃음소리, 그리고 아직 밖임을 증명하는 듯한 바람 소리까지 뭐 하나 잊지 않고 그 좁디좁은 곳으로 빨려 들어와 그의 귓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바쁘게 걸어가는 걸음 속에서도 휴대폰을 어깨에 끼고서 걷고 있을 그를 생각하니 어느샌가 자그마한 미소가 입가에 걸쳤다.

 "응, 자기야."

 남아있던 미소의 잔영이 사라지지 않은 채 목소리를 타고 전달이 되었는지 상기된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런 소리를 냈다는 것을 본인도 알아차렸는지 그는 머쓱함에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뭐 하고 있었어?"

 시간이 날 때마다 연락을 주고받으며 무엇을 했는지 미주알고주알 알아냈건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지 그는 오늘만 해도 몇 번이나 물어봤는지 모를 질문을 던졌다. 그런 제 애인의 질문이 지겹지도 않은지 낮게 큭큭거리며 웃던 목소리는 지금 본인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하나하나 털어놓기 시작했다. 무슨 이유로, 어디에서 나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이는 거리의 풍경은 어떤지,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은 어떻게 느껴지는지. 묻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서도 상세히 말해주는 그의 목소리에 누워있던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비록 옆에 있지는 않더라도 지금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머릿속에 선명히 그려지는 작금의 상황이 꽤 만족스러운지 그의 입에서는 작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느끼기에는 작다고 생각했던 그 웃음소리를 용케 들었는지 전화 저편에서 뭐가 그리 좋냐는 물음이 건너왔다. 자기는 지금 혼자 길거리를 걷느라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는 불퉁한 말과 함께. 생긴 건 자기보다 훨씬 무뚝뚝하게 생겨서는 이렇게 드문드문 던지는 말들은 어찌나 귀여운지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나도 딱 그 생각하고 있었는데. 무슨 생각이냐고? 침대가 너무 넓다는 생각? 혼자 쓰니까 너어무 넓은 거 있지." 

 둘이 누울 때는 꽉 찬 것만 같았는데 혼자 누우니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해도 왜 이리 넓은지 두 팔과 다리를 쭉쭉 펴도 남는 공간이 느껴질 때마다 가슴 한편이 같이 비워진 느낌에 괜스레 베개만 껴안고 있던 시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슬슬 자기 냄새도 안 나."

 옅으면서도 시원한 향이 나던 베갯잇에서는 더는 아무 냄새가 나지 않게 되었다. 항상 머리를 감고 나서 대충 털털 말리고는 풀썩 눕는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워 말려주곤 했었는데.

 "보고 싶다. 자기도 나 보고 싶은 거 알지."

 짧은 침묵 후에 결국 웃음 아래에 미뤄뒀던 속마음이 새어 나왔다. 상대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기에 이런 말이 부담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내내 숨겨왔던 말을 내뱉고 나자 그동안 눌러왔던 것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감정이 차올랐다. 보고 싶다. 자기가 너무 보고 싶어. 날숨과 함께 가볍게 흘러나간 속삭임이 방 안을 잠시 맴돌다 사라졌다. 그 말이 사라지는 잠깐의 공백이 있고 난 뒤 갈까 하는 짧은 대답 겸 질문이 돌아왔다.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에 그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뭐야, 올 수 있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축 쳐져 있던 그는 어디로 갔는지 벌떡 일어난 그는 빠르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양말과 의자에 걸려 있는 옷가지가 눈에 들어왔다. 한 손 가득 빨랫감을 집어 들어 세탁기에 쑤셔 박은 그는 시선을 들어 방 안을 훑었다. 이미 이곳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지 길지 않은 시간 내에 도착한다는 말이 들렸다. 먹고 치우지 않은 비닐봉지와 접시들을 정리한 그는 급한 불은 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상황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의 애인은 자주 가는 집 근처 빵집에서 그가 즐겨 먹는 빵을 사가는 게 좋을지 물어보고 있었다.

 "진짜? 그거 사 올 수 있어? 거기 줄 서서 사야 될 텐데."

 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느끼하지도 않고, 속에 들어간 잼이 마지막은 혀를 달달하게 감싸는 빵을 상상하자 어느새 입 안 가득 침이 고였다. 약간은 늦은 시간이지만 직장인들이 퇴근하며 자주 들르는 탓에 이 시간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는 걸 알고 있는 그는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그런 얄팍한 고민은 너털웃음 지으며 괜찮다고 말하는 그의 말에 눈 녹듯 사라졌다.

 "응. 사와 사와. 와서 마실 거랑 같이 먹으면서 붙어있자."

 냉장고에 마실 게 있던가. 차를 미리 준비해둬야 할까. 늦저녁의 깜짝 손님으로 인해 분주해진 생각들을 정리하며 그는 조금 후의 미래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의 애인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훤히 아는지 그의 웃음이 들렸다. 그렇게 좋아. 별것도 아닌 일에 그리도 행복해하는 그가 귀여운지 그가 웃음기 띈 질문을 던졌다. 

 "응. 생각만으로도 너무 좋다. 이번엔 뭐 볼래?"

 벌써 그의 머릿속에서는 영화가 나오는 노트북을 침대에 앉아 보는 둘의 모습이 떠다니고 있었다. 각각 빵과 컵을 손에 든 채 우물거리는 둘의 모습이, 그러다 허리에 드문드문 다가오는 손에 의해 그의 옆으로 좀 더 당겨지는 그의 모습이.

 "알았어. 찾아둘게. 얼른 와."

 약간의 재촉을 끝으로 통화는 끊어졌다. 그리고 좀 더 방을 정리하고 나자, 현관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오며 빵의 고소한 냄새가 코끝으로 스며들었다.

 "나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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